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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발견] (26) 이젤 기사의 사진

학창시절 화구를 갖추고 야외에서 그림을 그릴 땐 먼저 이젤을 펼쳤다. 나무막대기 몇 개가 전부이지만 세 다리를 펼치면 어떤 지형에서도 화판을 잡아주는 든든한 도구였다. 누군가 이젤을 펼쳐두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준비과정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요즘은 뭔가를 보여주기 위한 전시대 역할을 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사진이든 그림이든 평면이라면 어지간한 크기를 다 고정시킬 수 있고 적당히 뒤로 누워서 사람들이 보기에 편한 각도를 유지한다. 게다가 어디든 금방 설치하고 철수할 수 있는 데다 가격까지 저렴해 학술행사장의 논문, 휴대전화 판매점의 안내문까지도 이젤에 걸쳐 둔다. 이젤이 없으면 행사가 불가능할 정도로 널리 사용된다. 임시방편으로 그만한 것이 없으니 참 합리적인 판단이다.

간혹 지하철, 시청, 심지어 국회에서도 이젤을 늘어놓은 전시가 반복되는 것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이젤을 이용해야 하는 특별한 의도가 있지 않다면 그런 형식은 반짝 행사로 ‘때우는’ 듯한 느낌이 든다. 불필요한 격식을 없애는 것과 싸구려 경험은 다르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일상의 문화적 경험이라는 것이 초라해진 것이 아닐까. 공공 공간에서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할 만한 장치와 공유 방법을 디자인하는 것은 미술관이나 박람회의 전시디자인보다 훨씬 중요해 보인다.

김상규(서울과학기술대 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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