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충신의 상징으로 불리는 ‘사육신(死六臣)’의 후손들 간 다툼이 30여년간 계속되고 있다.

1453년 10월 10일 조선의 수양대군(세조)이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권을 차지하자 몇몇 충신들은 단종의 복위를 위해 들고 일어섰다. 거사를 도모하다 세조에 의해 숙청당한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등 6명은 사육신이라 불리며 추앙받게 됐다. 후손들은 매년 한글날(10월 9일)마다 이들의 충정을 기리고 있다.

그러나 1977년부터 후손들 사이에 다툼이 시작됐다. 국사편찬위원회(이하 위원회)가 당시 사육신과 함께 처형당한 백촌 김문기를 사육신에 포함시키면서부터다. 위원회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돼 있는 김문기의 공적도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를 두고 일부 후손들은 ‘금녕 김씨’로 김문기의 후손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국사편찬위원회에 압력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문기를 사육신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요구한 ‘현창회’는 국가가 인정한 공식단체가 됐지만, 일부 후손들은 김문기를 배제해야 한다며 ‘선양회’라는 이름의 단체를 따로 만들었다.

갈등은 2011년 물리적 충돌로 표출됐다. 공식제사일이 아닌 4월 3일 김문기를 뺀 기존의 사육신에게 제사를 지내려던 선양회 회원들을 현창회가 막아섰다. 서울 노량진의 사육신묘 공원 내에서 현창회 회원들은 선양회 회원들이 묘역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차려둔 제사상을 엎어버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단독 진원두 판사는 ‘제사방해죄’로 약식기소됐다가 정식재판을 청구한 이모씨 등 현창회 임원 4명에게 각각 벌금 50만원씩을 선고했다고 7일 밝혔다.

선양회 측은 “현창회가 공식 단체인 것을 인정하고, 그들이 주관하는 공식 제사도 인정한다”면서도 “우리도 개별적으로 사육신을 기릴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현창회 관계자는 “우리는 사육신의 순수한 문화를 지키기 위해서 행동한 것일 뿐”이라며 항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