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걸기-김혜림] 관혼상제, 여전히 남녀 차별 기사의 사진

보름 전 개인적으로 큰 슬픔을 겪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75세. 70세 청년이라는 요즘, 뭐가 바쁘셔서 그리 일찍 떠나셨는지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장례문화개선운동본부 공동대표를 지내시면서 화장문화가 자리 잡는 데 한몫하셨던 분이기에 화장을 해 충북 진천 선산에 모셨습니다.

화장장 일정에 밀려 4일장을 치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공부 열심히 하라’는 잔소리 한번 안 하시던 분이니 특별히 말씀을 거역한 기억은 없습니다. 다만, 말년에 하시고자 했던 일에 도움을 드리지 못한 게 못내 죄송스러웠습니다.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기기를 다하여라’(정철). 동서고금의 진리를 되풀이하기 위해 이 귀한 지면에 개인적인 일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 속에서도 2005년 호주제 폐지 현장을 지켰던 기자로서, 또 남존여비 문화에 맞섰던 여성으로서 느꼈던 자기반성과 다짐을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21세기는 빈방도 나눠 쓰고, 차도 같이 쓰는 공유(共有)의 시대 아니겠습니까.

장례 절차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남동생 셋에게 ‘문상을 받겠다’고 했습니다. 몇 해 전 시아버님 상을 당했을 때 ‘여자들은 문상을 받지 않는다’는 미풍양속(?)에 떼밀려 문상객 식사 수발만 했던 기억 때문이었습니다. 동생들은 ‘당연한 걸 왜 말하느냐’고 했습니다. 문상 받는 자리에는 나이순서 대로 섰습니다. 결과적으로 남편이 맨 앞자리였습니다. ‘맏상주’로 알고 인사했다가 사위라고 소개하면 흠칫 놀라는 문상객이 많았습니다. 또, 저를 건너 뛰어 남동생들에게만 조의를 표하는 문상객도 꽤 됐습니다. ‘호주제 폐지로 남녀차별은 사라졌다.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남성들이 적지 않은 때지만 장례식에서 여성은 여전히 ‘2등 시민’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슬픔 중에도 뭔가 불끈 치솟아 올랐습니다.

첫날은 경황이 없어 몰랐지만, 둘째 날 둘러보니 근조 휘장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남편과 남동생들이 졸업한 대학은 물론 고등학교, 중학교에서까지 보내왔습니다. 제가 졸업한 여중과 여고는 물론 여자대학의 것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전날의 분노는 슬그머니 부끄러움으로 바뀌었습니다. 장례가 여전히 남성 중심의 의식으로 남은 것은 여성들의 무관심 탓은 아닌가, 반성 했습니다.

예부터 중시되어 온 생활 문화의 뼈대인 관혼상제(冠婚喪祭). 그 중 성년의식인 관례는 ‘성인의 날’로 흔적만 남았고, 제례도 종교생활로 많이 바뀌었습니다. 상례도 예전에 비해 간소화됐지만 원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혼례는 우리의 전통의식보다는 서양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그 결혼식이란 게 그렇습니다. 아버지가 신부를 데리고 들어가 신랑에게 인도하는 모양새가 우리의 삼종지도(三從之道)를 떠올리게 합니다. 요즘 들어 신랑신부가 동시 입장하는 평등결혼식이 늘고는 있으나 신부가 아버지 손에 이끌려 들어가는 형식이 여전히 우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고치려는 노력을 게을리 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남녀평등 조항을 헌법에 명시하고, 남성중심의 호주제를 폐지하는 등 법과 제도의 개선은 여성운동가들이 주도했습니다. 오랜 관습을 바꾸는 일은 어머니, 아내, 딸, 며느리들이 해내야 할 몫인 것 같습니다. 딸의 손을 잡고 꽃길을 걷고 싶은 아버지를 ‘신랑과 평등하게 시작하고 싶다’고 설득하고, 여자는 상청에 나서는 게 아니라는 집안 어른들께 ‘슬픔에 아들과 딸, 사위와 며느리 차이가 있겠느냐’고 조곤조곤 말씀드려서.

김혜림 산업부 선임기자 mskim@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