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전윤철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이사장 기사의 사진

“국가경쟁력 높인 ‘DJ식 경제혁신’ 마인드 이어가야”

전윤철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이사장은 만 74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카랑카랑했다. 분홍색 셔츠 속에서는 젊은 사람 못지않은 다부진 몸이 느껴졌고, 검은 뿔테 안경 뒤에서 비치는 눈빛은 아직도 예사롭지 않았다. 김대중정부를 전후해 10여년 동안 차관급 이상 정무직을 7차례 역임했던 고위 공직자로서의 ‘부드러운 관록’보다는 무엇인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겠다는 ‘패기’가 먼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 때문일까. 지난 11일 국민일보 회의실에서 만난 전 이사장은 거침이 없었다. 그는 현오석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경제팀이 지금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과감하게 돌파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최근까지 경제정책을 이끌었던 후배 장관들에 대한 질책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달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이사장에 취임했다. 기념관은 어떤 곳이고 무슨 활동을 하는가.

“2000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화해와 용서에 기초해 민주화, 인권신장, 세계평화에 기여했다. 이를 기리기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200억원 정도를 마련해 전남 목포 삼학도에 기념관을 건립했다. 이곳에는 김 전 대통령의 유년시절, 정치에 입문한 뒤 온갖 역경을 극복하던 시절, 대통령 취임 이후 업적 등을 기리는 자료가 전시돼 있다. 어린 학생과 일반인을 위한 교육장도 있다.”

-이사장에 취임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2008년 5월 감사원장을 끝으로 공직을 그만둔 지 5년이 넘었다. 그동안 여행을 다니고, 몇몇 대학에서 석좌교수로 특강을 했다. 그러다 이희호 여사의 권유로 이사장직을 맡았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와 인권신장 등의 분야에서 업적도 크지만 국제질서가 근본적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에 닥친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지금까지 계속되는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마련했다. 이런 ‘김대중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외환위기가 발발했던 1997년 당시를 생각해보자.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1991년 구소련이 붕괴됐다. 미국이 세계질서를 주도하면서 급작스럽게 세계화가 진전됐다. 이는 지구촌 전체를 상대로 한 무한경쟁 시대가 왔음을 의미한다. 1등이 아니면 생존할 수 없는 승자독식 사회가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1960년대 추구했던 경제·사회 정책을 그대로 추진했기에 외환위기를 맞았다. 이런 시대에 김 전 대통령이 취임했던 것이다. 동시에 다른 한쪽에서는 디지털 혁명이 시작됐다. 굴뚝산업 중심으로 진행되던 경영 마인드와 산업전략으로 대응하지 못하게 됐다는 의미다. 이렇게 변화된 상황에서 당시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는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기존 경제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고, 시장경제 원칙에 따르는 경쟁체제를 최대한 도입해 기업 체질을 강화시키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기업 구조개혁, 금융개혁, 공기업 개혁, 노사협조 강화라는 원칙도 세웠다. 노무현·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정부가 들어섰지만 당시 짜였던 국제질서나 국내 여러 과제는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정치권이 보수와 진보로 갈라져 싸우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 나가면 국가 장래가 걱정스럽다. 그런 차원에서 김 전 대통령의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창조경제라는 이름으로 미래의 대안을 찾아가고 있다.

“우리는 경제개발 역사가 짧다. 1960년대 5·16을 계기로 정부가 주도하는 산업정책이 시작됐다. 이는 모방을 통한 추격형 전략이었다. 하지만 21세기 시작을 앞두고 사회·경제적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김 전 대통령 때에는 창조경제라는 말은 없었지만 1등이 아니면 안 되는 글로벌 경제여건 아래서 블루오션을 찾자는 전략이 있었다. 정보기술(IT), 생명공학기술(BT), 문화기술(CT), 나노기술(NT)을 국가의 차세대 성장동력산업으로 선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창조경제라는 말은 박 대통령이 만든 게 아니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호킨스는 2001년 영국경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창의성을 통해 과거에 없던 것을 찾아내자는 의미에서 창조경제라는 말을 처음 썼다. 2010년 유엔 무역개발위원회(UNCTAD)도 ‘창조경제 리포트’를 발표하면서 창의성과 혁신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세계화시대, 디지털시대에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꿔나가는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창조경제라는 방향은 맞다.”

-그렇다면 박근혜정부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창조경제는 인간의 창의성과 아이디어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교육 및 사회적 여건이 마련돼야 성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노기술(NT)은 학제 간 연구가 필수적이다. 기계공학과, 전자공학과로 나눠서는 가르치지 못한다. 각 산업분야 또는 금융과 산업을 서로 접합시키는 노하우가 개발돼야 한다. 그런 준비 없이 부르짖기만 해봐야 목표 설정은 되겠지만 얼마나 성과가 나올 수 있겠는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사실 창조경제라는 목표는 우리 경제의 성장이 제조업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고용을 유발할 곳이 어딘지 찾기 위해 나온 측면이 있다. 지금 당면한 분야는 서비스업이다. 여행, 관광, 의료, 교육 같은 서비스 분야가 하루빨리 산업화돼야 한다. 감사원장을 할 때 우리 유학생들이 사용하는 돈의 규모를 확인하면서 이를 뼈저리게 느꼈다. 당시 제조업 중심으로 성장했던 싱가포르는 제조업을 중국에 넘겨주고 교육과 의료 분야를 산업화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도 이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어 추진해야 한다. 교육기관, 의료법인 등의 저항은 강한 리더십으로 해결해야 한다. 창조경제는 그런 것부터 해결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발표한 서비스산업 육성 대책에는 이런 내용이 빠져있다. 이미 제기된 문제는 놔두고 새로운 것을 찾을 이유는 전혀 없다.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게 순서 아니겠는가.”

-현오석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한 경제팀이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뜻인가. 얼마 전 박 대통령은 현 경제부총리에게 경제 현안에 대한 조정력을 요구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경제부처를 총괄하는 부총리가 누구보다 중요하다. 경제부총리는 구정물에 발을 담그고 일을 추진해야 한다. 의견이 다른 장관들을 설득하고, 안 보이는 곳에서는 그들의 정강이를 걷어차기도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계층과 지역에 따라 갈등이 심하고 노사문제도 심각하다. 그런데 경제부처는 각 계층을 대변하는 구조다. 국토교통부는 건설업자,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어민, 고용노동부는 노동자, 산업통상자원부는 기업만 생각한다. 부총리가 이를 조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도 결단을 할 수 없다. 물론 대통령이 판단했더라도 우선순위가 맞지 않으면 직언해야 하는 것도 부총리의 임무다. 청와대 참모들이 경제부총리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현 부총리는 순진하고 무지무지하게 성실한 사람이지만 아직 할 일이 많다.”

-아직도 정부 출범 초기 논란이 일었던 경제민주화나 복지 문제는 여전히 논쟁이 심하다.

“지금 진행되는 경제민주화나 보편적 복지는 상당히 포퓰리즘에 가깝다. 과연 우리가 보편적 복지를 실행할 능력이 있는가. 공짜가 많으면 나라가 망한다. 누가 벌어서 지탱하겠는가. 무차별적 복지는 한번 시작하면 끊기 어렵다. 유럽 재정위기가 복지병에 찌든 회원국들의 무임승차 때문이라는 논리에 반박할 사람이 없다. 우리도 정말 어려운 사람을 중심으로 선별적으로 복지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재정이 경제의 최후 보루인데 국가부채가 많아지면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생긴다. 우선순위를 가리는 것이 경제부총리가 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경제민주화도 마찬가지다. 재벌로의 부의 편중현상에 대한 국민적 질책이 경제민주화라는 말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치권에서 새로운 규제만 만든다면 투자가 일어나지 않는다.”

-경제민주화가 강조되면서 공정거래위원회의 균형 잡힌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공정위가 무슨 일을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가.

“1970년대 초 김학렬 경제부총리는 정부주도 개발전략이 우리 경제에 거품을 끼게 하고, 재벌편중이 심해질 것이라는 점을 고민하면서 공정거래법을 구상했다. 당시 법제처에서 근무하던 내가 경제기획원으로 차출돼 공정거래법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했다. 물론 공정거래법은 1981년에야 제정됐지만 준비기간은 길었다. 입법 당시 기본정신은 시장에서 가격이 자율적으로 형성되도록 하되 경쟁을 시킨다는 것이었다. 1998년 김대중정부가 출범한 뒤 공정위는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선도적 역할을 했다. 부당 내부거래를 막기 위해 현대그룹에 과징금 1000억원을 부과하고, 정주영 회장을 고발했다. 재벌의 선단식 경영의 폐해를 근절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대우그룹이 해체되는 등 30대 그룹 중 11개가 없어졌다. 2000개가 넘던 금융기관 중 600개가 문을 닫았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전략업종을 선정하고, 조세를 감면하고, 금융과 외자를 특정 기업에 지원하면서 재벌을 키운 폐해가 크다. 공정위가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런데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뒤 공정위는 물가를 관리하는 기관으로 전락했다. 당시 위원장이 나를 찾아왔을 때 ‘공정거래법의 기본 정신은 알고 위원장을 하느냐’며 혼을 냈다. 대통령이 물가관리하라니까 공정위가 함부로 나서 원가계산에 나서기도 했다. 공정위는 담합에 철퇴를 내려야 하고, 소비자 보호를 위해 일해야 한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것이 바로 경제민주화다. 새로운 법이나 제도를 자꾸 만들면 기업이 어떻게 투자해야 할지 계획조차 짜지 못한다. 기존에 마련된 제도를 충실하게 관리하는 게 새로운 규제를 만드는 것보다 중요하다.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할 계획인가.

“앞으로 뭘 할 게 있겠는가. 일단 기념관 이사장 맡았으니 노벨평화상 받고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서울에 모아 동북아 문제와 세계평화 같은 공동 관심사를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한다.”

만난 사람=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

전윤철 이사장은

1939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 서울고,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66년 제4회 행정고시에 합격하면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정통 경제관료다.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실정책국장·물가정책국장·예산총괄심의관, 수산청장 등을 거쳐 1998년 김대중정부 초대 공정거래위원장에 임명됐다. 이후 기획예산처 장관, 청와대 비서실장, 재정경제부 장관 및 경제부총리를 역임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감사원장에 임명돼 임기를 마친 뒤 2007년 11월 연임했으나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인 2008년 5월 자진사퇴했다. 공직에서 일할 때는 강력한 추진력과 리더십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고, 직선적이며 상대를 가리지 않고 논쟁을 즐기는 성격 탓에 ‘핏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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