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신부전증 투병  “병은 생의 순환” 수용… 엄원태 시집 ‘먼 우레처럼 다시 올 것이다’ 기사의 사진

엄원태(58·사진) 시인이 6년 만에 네 번째 시집 ‘먼 우레처럼 다시 올 것이다’(창비)를 냈다. 1987년부터 만성신부전증을 앓아온 시인은 ‘시인의 말’에 밝혔듯 “대구시 동북쪽의 변두리로 이사와 인근 초례봉 산자락을 산책하면서” 심상에 들어온 소멸의 역동성을 형상화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시의 기조는 병마에 시달린 자의 쓸쓸한 정서가 아니라 생의 순환을 정당하게 수용하려는 온화함으로 가득하다.

“저녁의 공원은 세상의 평등함을 보여준다 (중략)// 그것들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저녁 하늘의 무심한 붉은 구름, 말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죽지 흰 새 몇, 그 아래 조용히 말을 거두어들이는 잎 큰 후박나무들, 저 홀로 짙푸르러 어두워가는 느티나무 그늘 아래”(‘다만 흘러가는 것들’ 부분)

그의 눈에 비친 대상들은 한결같이 역동적이다. 하늘을 흘러가는 구름, 죽지 흰 새의 날갯짓, 잎 큰 후박나무 등이 그것이지만, 실은 그것들을 보고 있는 시인 자신도 느티나무 그늘에 들어있는 피조물의 하나임을 잊지 않는다. 풍경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마저도 풍경을 이루는 한 요소로 들어가 시의 몸을 이루고 있다. 그렇기에 오랜 세월 신장 투석을 받아야 했던 고통을 뒤로 한 채 ‘세상의 평등함’을 노래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지병 자체를 시적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그 대상과의 경계를 지워버린 채 온전히 병마와 하나가 되어버린 시도 있다. “이제 너는 타나 호수로 돌아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타나 호수, 내 침침한 흉강 한쪽에 넘칠 듯 펼쳐져 있다. 거기에 이르려면 슬픔이 꾸역꾸역 치미는 횡경막을 건너야 한다. 고통의 임계 지점, 수평선 넘어가면 젖가슴처럼 봉긋한 두 개의 섬에 봉쇄수도원이 있다. 우리는 오래 전 거기서 죽었다.”(‘티나 호수’ 부분)

흉강의 한쪽에 있어야 할 장기(臟器)들 대신에 늘 침윤지인 티나 호수가 있으니, 그것은 비유하자면 신부전증의 호수일 터이다. 시인은 이 시에서 아름다운 풍광이란 고통의 임계지점을 관통해야만 닿을 수 있다는 인식을 드러내 보인다. 절박한 고통의 관문을 통과한 것이야말로 진정 아름답지 않은가.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