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정진영] 그 때의 여름성경학교 기사의 사진

거의 매년 여름이면 까마득할 정도로 오래된 여름성경학교의 추억이 떠오른다. 컴퓨터 게임도, 과외도 없던 시골 개구쟁이들의 여름방학은 대체로 비슷했다. 방구들이나 마루에 드러누워 선풍기 바람에 뒤척이거나, 동네 빈터 흙먼지 속에서 왕방울 땀을 흘리며 공을 차는 일이 고작이었다. 이도저도 아니면 집 근처를 쏘다니다 땀범벅으로 귀가해 ‘더위 먹는다’며 타박하는 엄마의 잔소리를 듣곤 했다. 40∼50대 남성들의 유년 시절 여름은 그처럼 뜨겁기만 했을 뿐 심심했다.

일상을 한방에 깨는 비상구

여름성경학교는 하품 나는 일상을 한방에 깨뜨리는 우리들의 비상구였다. 교회에 다니고 안 다니고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12월의 크리스마스가 풍성한 선물로 동네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면 7∼8월의 성경학교는 또 다른 시청각적 재미로 유혹했다. 성탄절에는 성극(聖劇)이 있었고, 여름성경학교에는 율동이 넘쳐났다.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주전부리까지 덤으로 주는 여름성경학교는 놓칠 수 없는 아이템이었다.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반사 선생님들이 매직펜으로 신문지 배 크기의 전지에 꾹꾹 눌러쓴 찬양 곡 가사를 따라 부르며 순서는 시작됐다. 형과 누나, 언니가 갑자기 ‘선생님’으로 호칭이 변해 한동안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성경을 각색한 동화 구연이 이어지고 또래끼리 나뉜 분반공부가 진행됐다.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분반공부 때 들었던 다윗과 골리앗, 삭개오, 선한사마리아인의 이야기는 내 신앙 원천의 일부가 됐다. 여름성경학교 교가 앞 소절을 음정 박자 가사 어느 것 하나 틀리지 않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따라 부를 수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란다. ‘흰 구름 뭉게뭉게 피는 하늘에 아침 해 명랑하게 솟아오른다…’는 여전히 변함없는 여름성경학교 교가다. 사탕과 과자를 하나라도 더 받으려다 걸려 벌을 서던 일도 선명하다.

2013년의 여름성경학교는 밴드의 전자 음악, 대형 스크린의 영상, 파워포인트와 빔 프로젝트가 중요한 준비물이라고 한다. TV 리얼 버라이어티 수준의 게임이 아니면 먹히지 않고 ‘봠봠아쿠아’ 정도의 야외프로그램이나 아예 캠프 차원의 수업이라야 각광받을 만큼 크게 바뀌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럼에도 빈자리 메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주일학교 선생님들의 호소다. 일부에서는 성경의 본질을 가장 온전히 흡수할 수 있는 주일학교 어린이들에게 지나치게 감각적으로 접근함으로써 ‘말씀’이 부족하다고 걱정한다.

상상만으로도 청량감 줄 것

몇 년 전부터 여름이면 폭염과 홍수가 더욱 심해진다. 올여름에도 한쪽에서는 무덥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물난리로 고생한다. 삶은 갈수록 팍팍하다. 자본의 논리는 이미 시장 경제를 추월한 시장 사회로 우리를 몰아넣었다. 디지털 혁명이 가져온 편리함을 신봉해 왔지만 이마저 과잉의 피로감을 준다. 감성을 어루만짐으로써 상처를 치유했던 힐링도 어느덧 잉여의 단계에 이르렀다.

이래저래 여름은 갈수록 불편하다. 이때 슬며시 그때의 여름성경학교를 떠올려보면 어떨까. 친구들, 선생님들은 어디서 무얼 할까. 고향 모교회는 얼마나 변했을까. 적어도 내게, 그때의 여름성경학교는 소박했지만 정감 어린 에피소드로 가득 찬 한편의 감성 드라마였다. 이 같은 상상만으로도 여름을 견딜 수 있는 산뜻한 청량감을 맛본다.

정진영 종교국 부국장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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