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국회에 교양대학 두면 어떨까요? 기사의 사진

“선한 말은 아름다운 음률에 실려 돌아오고 퍼져나가 민주정치의 대합창이 된다”

국회 안에 ‘정치교양대학’을 설치하면 어떨까? 필수과목으로는 ‘민주적으로 생각하기’, ‘민주적으로 말하기’, ‘민주적으로 행동하기’, 그리고 교양과목으로는 ‘정치사’와 ‘리더십’이 좋겠다. 국회의원이면 대부분 학식이 남다를 테니까, 새삼 정치이론, 정치제도를 가르치기에 특별한 공을 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으로서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대해서는 재교육이 절실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9일 기독교 지도자들과 청와대에서 오찬을 함께하며 ‘막말’에 대해 많이 걱정한 끝에 이런 말을 했다. “목사님들이 설교하면서 ‘모범을 보여야 하는 지도층이 막말하는 일이 없도록 기도합시다’라고 하면 모두 부끄러워 법으로 막는 것보다 더 자숙하지 않을까요?” 자신을 겨냥한 야당 의원들의 막말에 속이 많이 상했을 법하다.

정치는 말의 향연이다. 위대한 정치리더들은 대개 뛰어난 웅변가였다(히틀러 같은 악랄한 인간도 웅변의 달인이었다고 하지만…). 자연 이들은 대단히 감동적인 연설문을 남겼다. 말과 글을 통해 차세대 정치인을 길러내는 교사의 역할까지 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배우려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가르침을 외면하는 사람에게는 배울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 때문에 ‘막말’ 솜씨만 늘어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누군데, 교육을 받아?” 자존심이 대단히 상해서 이렇게 호통 칠 국회의원들이 많을 것 같다. 국민대표로서의 자존심이 나쁠 리 없다. 다만 그것을 옳게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천박한 언사와 인격이 문제일 뿐이다.

민주정치 황금기의 고대 아테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은 웅변교사였다. 프로타고라스를 필두로 하는 소피스트들이 그 직업에 종사했다. ‘궤변론자’로 폄하되기도 했지만 그들은 당대의 지식인들이었다. 수업료 수입도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이른바 ‘강남학원가 명강사’ 뺨칠 사람도 많았으리라고 추측된다.

막말의 독기는 자신의 정신과 육신에 먼저 그 나쁜 기운을 퍼뜨린다. 마음에서 성대와 입으로 이어지는 말의 통로는 ‘언어 하수구’가 되고 만다. 그 악취를 곁에서 맡으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바로 자신의 가족들이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사이버 공간 안에, 언어의 하수가 엄청난 양과 기세로 흐르게 된 것도 정치언어의 타락 때문이다. 정치권이 만들어낸 증오와 저주의 화법, 비아냥거리기와 조소의 말투가 범람해서 우리 사회를 오염시켰다고 단언할 수 있다. 자신의 입에서 나간 악담이 몇 배 몇 십 배로 부풀어 자신을 덮치는 것을 경험한 정치인도 있을 것이다.

선한 말은 아름다운 음률에 실려 돌아오고 퍼져나간다. 그게 하모니를 이루면 민주정치의 대합창이 된다. 독한 말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자신과 이웃의 영혼·인격을 저민다. 그게 도를 넘으면 민주정치는 심각한 상처를 입는다.

물론 정치를 하는 과정에 상호 비판이나 비난을 피하기는 어렵다. 논쟁을 벌일 때도 있고, 감정싸움으로 치닫게 될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어느 때든 정치인으로서의 품격은 지켜야 한다. 특히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대표’다. 대외적으로는 인격까지도 대표한다는 것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느 날 영국 하원에서 어떤 사회당 의원이 처칠 총리에게 상스러운 말을 퍼부었다. 처칠은 내내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다. 그 의원의 장광설이 끝나자 처칠이 일어나서 말했다. “존경하는 의원님의 의견을 본인이 가치 있게 생각했다면, 아마 본인은 화를 냈을지도 모릅니다”(제임스 C 흄스, 윈스턴 처칠의 재치와 지혜, 권국성 역). 가끔 이런 위트를 우리 정치인들에게서 발견할 수는 없을까?

이건 정말 이해가 안 돼서 하는 말인데, 우리의 대통령을 향해 그렇게 심한 말을 하는 일부 야당 정치인들이 북한 김일성 왕조의 군주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그처럼 호의적이고 우호적이기까지 할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누가 대답 좀 해주시면 좋겠군요, 의원님들.

이진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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