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김성국] 실업문제 해결의 정공법 기사의 사진

“5%의 실업률보다는 차라리 5% 인플레이션을 택하겠다.” 이것은 1974년부터 1982년까지 독일 총리를 지낸 헬무트 슈미트가 총리 시절 자주 했던 말이다. 사회민주당 소속 총리로서 대기업의 이사회를 견제하는 감독이사회를 설치하고 그 구성을 노사 동수로 하는, 파격적인 ‘신 공동의사결정법’의 의회 통과에 앞장서는 등 근로자의 권익향상을 위해 힘썼던 진보정치가 슈미트는 자신의 총리 재임시절 자꾸 증가하는 실업률이 내내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그래서 실업률이 높아져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불만세력화 되어 사회불안을 야기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막아야겠기에 실업률을 낮출 수만 있다면 차라리 물가상승을 감수하는 정책이 더 나은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율 간에는 역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영국의 경제학자 필립스의 이론이다. 그는 1958년 발표한 논문에서 영국의 경제를 분석하면서, 실업률이 낮은 해에는 임금상승률이 높고, 실업률이 높은 해에는 임금상승률이 낮다는 사실을 ‘필립스 곡선’을 통해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명목임금상승률과 실업률 간에 역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그의 주장은 다른 여러 학자들에 의해 지지되었으며 케인즈 학파의 재정금융정책 사용의 당위성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1970년대 들어 세계 경기의 장기적 침체 속에서 인플레이션율이 증가하는데도 실업률이 감소하지 않고 오히려 계속 증가하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관찰되면서 필립스 곡선의 안정성에 대해 비판이 제기되었다. 즉 독일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실업률을 감축시키기 위해 방만한 통화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의 증가를 꾀했으나 실업률은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만 가는, 스태그플레이션의 함정에 빠지게 된 것이다. 정책당국자들은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인플레이션율의 증가는 장기적으로 고용증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노동시장 개입과 고용여건 개선이 실업문제를 장기적으로 해결하는 정공법이라는 주장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독일 슈뢰더 정부에서 추진했던 ‘어젠다 2010’과 ‘하르츠 개혁’은 이러한 방향의 고용정책에 속한다.

우리 정부가 최근 ‘고용률 70% 로드맵’을 발표했다. 핵심은 정규직 근로 시간을 줄여서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시간제 근로의 확산으로 고용불안이 더욱 확대될 수도 있다고 비판하면서 파트타임 근로자의 양산은 정부가 말하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는 거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서구 선진국에서는 파트타이머로서 정년까지 보장받는 일자리가 많아 특히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의 균형을 추구하는 여성들의 고용안정에 기여하고 있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정부의 고용률 70% 로드맵은 ‘남성중심 전일제 근로자의 장시간 노동’이 보편화된 우리나라의 고용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정규직 근로자’라고 함은 보통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를 하는 근로자를 말하는 데, 외국에서는 하루 4시간 정도 일하면서 정년까지 근무하는 파트타이머도 엄연히 정규직 근로자이며, 급여와 복리후생 측면에서 비교적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가 많다. 고용률 70% 로드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통화팽창 정책을 통한 고용증대라든지, 벤처 비즈니스의 양적 확대, 남성위주의 전일제 정규직 일자리 확대와 같은, 과거 별로 성공하지 못했던 거시정책에서 벗어나, 가족을 돌보는 여성이 유연하게 일할 수 있는 고용제도, 중소 벤처 사업자가 일자리를 창출하면 정부나 대기업이 일정부분 리스크를 공유하는 제도, 경제주체들이 각자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구조조정과 간소화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책임과 위험을 공유하는 고용혁신 정책인 ‘한국판 어젠다 2010’이 필요하다는 전 독일총리 슈뢰더의 충고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김성국 (이화여대 경영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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