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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 칼럼] 친노, 디테일에서 졌다

[김진홍 칼럼] 친노, 디테일에서 졌다 기사의 사진

“무모하게 덤벼든 NLL정국… 치밀하게 대응한 여권에 판판이 깨져”

지난해 11월 8일, 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는 전국지역위원장 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면서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는 서양 속담을 인용했다. 안철수 후보와의 야권후보 단일화 협상에 꼼꼼하게 임하겠다는 의지를 표출한 것이다. 실제로 양측은 여론조사 방식 등 단일화를 위한 디테일을 놓고 실랑이를 벌였다. 대권(大權) 고지가 바로 눈앞에 있는 상황인지라 두 후보의 줄다리기는 상상하기 힘들 만큼 팽팽했을 것이다. 승자는 문 후보였다. 협상은 안 후보의 일방적 사퇴 선언이라는 돌발 사건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안철수 의원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문 후보 측에서 단일화가 안 되면 3자 대결로 가겠다고 선언한 것을 보고 “피눈물 나는 결단을 했다”고 언급했지만 디테일에 약했던 패자의 변(辯)일 뿐이다.

최근 검찰 손으로 넘어가면서 소강상태에 접어든 NLL(북방한계선) 정국도 디테일의 싸움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는 새누리당과 청와대의 완승이다. 민주당은 왜 졌을까. 문재인 의원을 중심으로 한 친노 인사들이 세밀한 계산 없이 무모하게 대든 것이 주요 원인이다. 친노는 거친 말로 싸움판을 키웠으나 디테일을 중시한 여권에 판판이 깨졌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친노를 포함한 민주당은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사건에 몰두했어야 했다. 박근혜정부를 압박하고, 정국 주도권을 쥘 수 있는 호기였다. 하지만 친노가 차버렸다. 새누리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의혹을 다시 제기하자 친노 인사들이 참지 못하고 덥석 물어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새누리당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발끈했다. 문 의원은 ‘정계은퇴’ 배수진까지 쳤다. 친노가 ‘귀태’ 발언 파문이라는 자충수를 두자 청와대까지 대야 공격에 가세하면서 NLL 전쟁은 가열됐다. 자연스럽게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은 가려졌다.

친노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원본 공개를 주장한 것도 실책이었다. 노무현정부가 대화록 원본을 애당초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에 이관하지 않았다는 정황들이 하나둘씩 나오면서 오히려 궁지에 몰렸다. 검찰 수사의 칼끝도 친노를 겨냥하고 있다. 문 의원은 부랴부랴 이쯤에서 논란을 접자고 했으나 당내에서조차 무책임한 발언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치밀한 전략 없이 목소리를 높이다가 제 발등을 찍은 셈이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NLL 논쟁에 시간을 너무 허비해 국정원에 대한 국정조사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게 됐다는 점이다. 내달 15일까지로 국정조사 시한이 정해져 있어 검찰 수사 결과 이상의 것을 밝혀낼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국정원 기관보고도 새누리당 주장대로 비공개로 진행된다. 게다가 때마침 하한기다. 국정조사에 대한 국민들 관심이 시들해질 시기여서 민주당이 정국 주도권을 되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란 얘기다.

여권이 NLL 정국을 조성한 이유는 뭘까. 분명하진 않지만, ‘촛불’을 끄려는 의도였을 듯하다. 이명박정부가 집권 초의 촛불시위로 인해 임기 내내 국정운영에 애를 먹었던 사실을 박근혜정부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으로 촛불시위가 재연될 조짐이 나타났으니 수수방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바로 그때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논란은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짠 시나리오”라며 공세를 폈다. 여권은 이를 놓치지 않고 국정원이 보관 중인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발췌본 열람을 시작으로 정국을 NLL로 빠르게 이동시켰다. 그리고 촛불의 기세를 꺾는 데도 성공했다. 정권의 위기국면을 무사히 넘긴 것이다.

그러고 보니 박 대통령이 지난 17일 관광진흥확대회의를 주재하면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관광산업을 발전시키려면 소소한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새누리당 지도부에게 NLL 정국의 디테일을 잘 챙기라는 메시지를 넌지시 건넸던 건 아니었을까.

논설위원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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