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황태순] 청와대 정무수석 부재 두 달 기사의 사진

민주당이 거리로 나섰다. 지난 31일 국가정보원 국정조사 파행의 원인이 새누리당에 있다면서 장외투쟁을 선언했다. 사초(史草) 실종사태에 이어 정치실종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반 년 만에 본격적인 정치시험대에 올라서게 됐다. 정치실종의 가장 큰 책임은 집권여당에 있고, 보다 근원적으로는 청와대에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정무수석비서관 자리가 공석이 된 지 두 달이 됐다. 정무수석은 사실상 선임수석으로 권력 내부의 조율사 역할을 도맡아 한다. 박근혜정부 출범 당시 정무수석으로 임명된 이정현 수석은 윤창중 파동의 와중인 지난 6월 홍보수석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현재 청와대 정무라인은 허태열 비서실장과 김선동 정무비서관이 맡고 있다.

정무수석 부재 2개월을 복기해 보면 청와대의 정무조율 기능이 얼마나 중요한 지가 분명해진다. 여야 정치권의 대충돌은 6월 20일 새누리당 소속 정보위원들이 국정원으로부터 8쪽짜리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요약본을 입수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새누리당 정보위원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즉각 그 내용을 공개했다. 야당의 반발은 불문가지였다. 그 다음날 민주당 문재인 의원은 국가기록원에 있는 대화록 원본을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따라 전면 공개하자고 제안했다. 여권은 기다렸다는 듯이 6월 24일 국가정보원에서 보관 중이던 대화록을 비밀해제한 뒤 만천하에 공개했다. 그러자 문재인 의원은 여러 의혹을 제기하면서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국가기록원 대화록 공개를 촉구했다.

이후 사태의 진전에 대해서는 또다시 언급하는 것이 불필요할 지경이다. 국가기록원에는 대화록 자체가 없었다. 그것을 두고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한 달 반 동안의 진행과정을 보면 여야 모두가 마치 낭떠러지를 향해 무엇에 홀린 듯이 달려온 것 같다.

만약 긴 호흡으로 정치권 전체를 조율하는 책사(策士)가 있었다면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방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선 국정원 국정조사로 코너에 몰리자 대화록을 공개하자는 의견이 비등하더라도 이를 주저 앉혔어야 한다. 국정원이 대화록을 공개하겠다고 나서도 이를 적극 말렸어야 한다. 국회 본회의에서 국회의원 257명이 대화록 공개에 찬성하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

정쟁에도 금도(襟度)는 있어야 한다. 아무리 싸우더라도 상대방의 존립의 기반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설사 반정부 투쟁을 할지라도 정권의 정통성 자체를 부정한다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 정권은 없다. 야당의 특정 세력들을 나라를 팔아넘기려했던 매국집단으로 매도한다면 그냥 앉아서 죽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작금의 우리 정치권은 금도를 거리낌 없이 넘나든다.

역대 정무수석의 기록을 보면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는’ 역할을 해 왔다. 여당에게는 ‘대통령의 의중’임을 슬쩍 내비치면서 강경 모드로의 돌진을 제어해 왔다. 야당에 대해서는 설득도 하고 으름장도 놓으면서 제도권 밖으로 튀어나가려는 원심력을 통제해 왔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밑바닥 민심을 대통령에게 전달해 온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거의 예외 없이 정치와 거리를 두려고 했다. 본인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정치의 중심에 있었으면서, 정작 대통령이 된 후에는 정치를 멀리하고 전문 테크노크라트들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농후했다. 첫 한두 해는 그런대로 끌고 가는 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정치를 멀리하면 할수록 정치적 리더십이 붕괴되곤 했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휴가 중이다. 국정수행에 대한 지지율도 60%를 훌쩍 상회하고 있다. 당연히 짜증나는 국내 정치 쪽으로는 눈이 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립과 갈등의 정치가 계속되면 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 또한 커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은 정치의 최종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휴가가 끝나는 대로 정무수석을 임명하는 것이 순리다.

황태순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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