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서울광장에 난전을 편 까닭은? 기사의 사진

“부상자를 500m나 업고 뛴 여승무원의 승객 사랑, 여야 정치인들이 배웠기를…”

사진 한 컷이 한 달이 다 된 지금까지도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다. 아시아나항공 여승무원이 부상자를 업고 뛰면서 사고 여객기를 돌아보는 장면이다. 500m를 업고 뛰는 그 힘겹고 절박한 상황에서 왜 뒤를 돌아봤을까? 하긴 무엇에든 쫓길 경우 본능적으로 뒤돌아보게 되기는 한다. 그런데 그것만은 아니었을 듯하다. 거기에 남겨두고 온 사람들이 걱정스러워 저절로 눈이 그쪽으로 향했을 것이다. 자신이 책임졌던 승객에 대한 애틋하고 살뜰한 사랑이 여전히 큰 감동으로 남아 있다.

국가도 어떤 의미에서는 운항 중인 여객기다. 대통령은 기장이고 국가 3권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공직자나 기관들은 승무원이다. 야당과 그 소속 국회의원들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민주당이 서울광장에 천막당사를 치고 ‘장외투쟁’에 나서기는 했는데, 아직까지는 별 소득이 없어 보인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이것저것 요구를 늘리더니 결국 박근혜 대통령과 영수회담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제 와서 난전을 걷을 수도 없고, 계속하자니 앞이 안 보이는 상황이다. 이 진퇴유곡에서 헤어날 길을 박 대통령더러 열어달라고 하는 것 같아 보기에 안쓰럽다.

이럴 것이었다면 진작 대선불복 운동을 전개하고, 당선무효소송을 제기할 일이었다. ‘대선불복’은 아니라면서도 계속 트집을 잡고 온갖 막말을 다하더니 이젠 아예 시민단체들의 대선불복 촛불집회에 편승하기로 했다. 이들이 과연 국가 유사시에 국민들을 들쳐 업고 뛰어줄 사람들인지 그게 궁금하다.

입법부는 거의 전적으로 새누리당과 민주당에 맡겨져 있다. 옛날처럼 뒷덜미를 쥐고 협박하는 세력은 없다. 그런데도 카운터파트가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광장의 정치를 선언했다. 이건 정당의 자기부정이다. 그걸 몰라서 이러는 것 같지는 않다. 혹 심리적 혼란으로부터의 도피, 무력감에 대한 자기 반발의 표현이 아닌가?

당내 친노·비노의 틈새가 너무 벌어져 있다. 친노는 김 대표 체제에 협조는커녕 되레 고비 때마다 여야관계를 ‘극단적 대결구도’로 몰아가곤 한다. 그렇지만 김 대표가 디디고 선 비노는 실체가 없다. 그러니 당 지도부로서는 친노의 뒤치다꺼리나 하면서 상황에 떠밀려 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거기에 더해 당 대표를 중심으로 한 최고위원회와 당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한 원내대표단의 ‘투 코어 체제’가 당 지도부의 무력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김 대표가 이끄는 최고위원회는 서열상으로는 원내대표단의 상위 기구로, 말하자면 상왕부 같은 존재다. 하지만 실제 의정을 이끄는 것은 원내지도부다. 현실정치에서 당 대표의 역할은, 그 상징성을 감안하지 않고 본다면, 상대적으로 미미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정당의 이 구조적 균열이 민주당 김 대표의 가출을 부추겼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새누리당의 구조도 마찬가지다. 다만 여당으로서 권력에 등을 기대고 있는 한, 어지간한 불만은 스스로 해소할 수 있다. 황우여 당 대표가 역할이나 위상에 큰 욕심을 내지 않는 것도 ‘당내 평화 유지’의 한 요소가 된다. 가끔 앞나서려 하다가도 금방 자신의 한계를 눈치 채는 빛이다. 물론 여당에도 역시 이원적 구조는 분열 갈등 요인으로 작용할 게 틀림없다.

그래서 말인데, 차제에 여야가 함께 정당제도 자체를 손질할 일이다. 이미 민주당 김 대표는 중앙당의 슬림화를 공언한 바 있다. 이왕 그러기로 했으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건 어떨까? 중앙당 지도부는 원내대표단이 겸하게 하고, 중앙당은 당원관리, 원내 활동 지원, 선거지원, 당 행사 주도 등의 역할만 하는 기구로 위상과 역할을 바꾸는 게 바람직하다.

지금의 대통령제를 유지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정당의 중앙당이 거대한 권력기관이 되어서 대통령 및 정부와 직접 권력투쟁을 하는 우리의 정당정치 행태와 구조는 바뀔 때가 됐다. 그게 싫으면 의원내각제를 채택하든지…(단 그게 한국정치의 구원이 될 것인지, 아니면 재앙이 되고 말 것인지는 따로 따져 볼 일이다).

이진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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