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이선우] 체제 변화 요구하는 사회 기사의 사진

며칠 전 만난 후배의 걱정거리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며 필자를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요즘 우리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 사고, 갈등, 혼란 등과 같은 현상은 그동안 우리사회를 유지하고 지탱해 왔던 틀(Frame) 또는 체제(System)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틀이나 체제라는 것은 오랜 기간 동안 국민들 상호 간에 내재되어 온 암묵적 약속, 상식, 통념, 규범, 법, 제도, 문화 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탈산업화 시대로 전환되면서 우리 사회는 상당한 혼돈을 경험하고 있으며, 그 결과 현재의 틀이나 체제로는 더 이상 팽창되고 다양화된 변화 욕구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체제로의 진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불산가스 누출, 무허가 해병대캠프, 세계 1위 자살률, 헌법 위의 떼법, 극단적 노사관계, 비정규직 문제, 원전부품 위조, 세대 간 갈등, 대통령기록물 실종 외에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현상들이 마치 별개인 것처럼 보이지만, 면밀히 분석해 보면 일정한 유형을 형성하면서 공통점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 후배 말로는 이런 사건들이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기존 체제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불산 같은 가스누출 사고가 발생하자 계속해서 유사 사건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발생한다. 유명 연예인이 자살하자 모방 자살들이 뒤를 잇는다.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고자 하지만 오히려 세수가 줄어들고 5만원권 현찰은 유통되는 대신 장롱 속으로 들어간다. 무역흑자가 나지만 일부 품목에서의 흑자와 줄어든 수입 덕택에 흑자구조라는 착시현상이 나타난다. 학교폭력, 주폭, 성폭력 등이 갈수록 흉포해지고 사람 간의 관계도 정이 메말라 간다. 사교육 부작용을 우려하여 불법과외를 엄단한다고 하여도 음성적 과외가 판을 치고 지하로 더 은밀히 숨어들면서 위험수당까지 합쳐진 과외비가 학부모들에게 청구된다.

그런데 우리의 대응책은 사고에 대한 징계, 처벌에 더 관심을 갖는다. 예방적 처방을 하지만 거의 대부분 처방이 소위 “문제를 일으킨 자 일벌백계로 다스린다”는 것으로 내려지기 십상이다. 그리고 문제원인을 제거한다고 제시하는 방안이 자살 예방을 위하여 번개탄 판매를 규제하겠다는 식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사고가 변하지 않고 집단의식이 변화하지 않는 한 규제중심의 처방은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다.

현재 발생하고 있는 대부분 사건, 사고, 갈등과 같은 각종 현상들이 혼돈 속에 서로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에 이를 해체하고 완전히 새로운 틀이나 체제를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온 것이다. 별개의 사건, 사고처럼 보이지만 이를 둘러싸고 문제를 유발시키고 있는 주요 원인은 우리 사회가 오랜 기간 유지하여온 틀과 체제라는 지적이다. 즉 기존의 틀 속에서는 현재의 사회현상을 설명하고 치유할 수 있는 새로운 대책마련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세대 간 갈등도 탈산업화 사회 이후로 진화한 우리 사회를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들 상호 간에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세계 1위의 자살률을 기록하는 이유도 현재의 사회적 틀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상실감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다.

새로운 체제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내부혁신과 이를 위한 국민적 운동이 필요하다. 1960년대는 물질적 빈곤을 극복하기 위해 새마을운동이 일어났다면, 지금은 정신적·문화적 빈곤을 극복하기 위한 국민적 운동이 일어나야 할 시점이다. 선진국 문턱에서 진입하지 못하고 계속 헤매고 있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선진국민으로서 품위를 갖출 만큼 성숙된 사회·국가체제를 구축하지 못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 경제, 문화, 법, 정치 등 모든 면에서 대한민국 개조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선우 (방송통신대 교수·행정학과)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