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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으로 읽는 성서-(2) 예루살렘을 향하여] 벧엘과 아이

[고고학으로 읽는 성서-(2) 예루살렘을 향하여] 벧엘과 아이 기사의 사진

아브라함, 벧엘과 아이 사이 언덕에 제단쌓고 여호와 이름 불러

벧엘과 아이의 위치


주후 70년 로마가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후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랜 세월동안 그들의 땅을 떠나 있어야만 했다. 다른 언어를 가진 많은 강대국들이 이스라엘을 통치하였기 때문에 누가 통치하느냐에 따라 성서의 지명이 바뀌곤 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성서의 지명을 밝혀낸 것은 미국인 에드워드 로빈슨이다. 1838∼52년 사이 그는 신·구약 성경과 주후 1세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서적, 주후 4∼6세기 유세비우스·제롬 등 수많은 교부들의 기록을 토대로 성서의 장소들을 찾아다녔다.

로빈슨은 우선 폐허의 뜻을 가진 아랍어 텔(Tell)과 키르벳(Khirbet)의 호칭이 붙은 장소에는 성서에 등장할 법한 고대 흔적이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폐허 언덕의 이름은 비록 수천년이 지났지만 히브리어의 어원이나 발음을 담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런 방법으로 많은 유적지가 발굴되고 그 위치가 확고히 되어 오늘날에는 지도에도 표시가 되었다.

그러나 그가 밝혀낸 몇몇 장소들은 성서적 시대와 일치하는 유적이 발견되지 않아 아직도 논란이 있다. 성서 사건의 진위성에 위협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예들 중에 자주 거론되는 장소가 벧엘과 아이다.

성서 기록에 의하면 벧엘과 아이는 상당히 가까운 위치에 있다. 창세기 12장 8절에서 아브라함은 서쪽은 벧엘이며 동쪽은 아이인 사이 언덕에 장막을 치고 거기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여호수아는 여리고에서 사람을 보내 아이를 정탐할 때에도 아이는 벧엘 동쪽 벧아웬 곁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수 7:2).

이 두 장소가 가깝게 있었기 때문에 하나를 찾으면 다음 하나를 찾는 것은 상당히 쉬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사사기 21:19은 실로가 벧엘 북쪽 르보나 남쪽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큰길 동쪽에 위치해 있다고 말하였고, 제롬은 주후 4세기 예루살렘 북쪽 12로마마일 떨어진 지점에 벧엘이라 불리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고 말하였다. 이를 토대로 로빈슨은 아랍어로 베이틴(Beitin)이라 불리는 장소를 벧엘, 이 장소의 동쪽에 위치한 엣-텔(et-Tell)이라 불리는 장소를 아이라고 주장했다.

베이틴=벧엘

벧엘은 야곱의 이야기와 관련된 너무나 유명한 장소다. 아버지 이삭의 임종을 앞두고 야곱은 형 에서의 축복을 가로채 장자가 받아야 할 유산을 자신이 받았다. 형의 보복이 두려워 어머니의 고향인 하란으로 피신하면서 한 장소에 이르러 돌을 베고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그는 하늘로 향하는 사다리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천사들을 보았다. 잠에서 깨어 베고 있던 돌을 세우고 당시 루스라 불리던 이 장소를 벧엘 즉 하나님(엘-El)의 집(벧-Beth)이라 불렀다(창세기 28장).

벧엘은 야곱과 여호와 사이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여호와는 야곱에게 나타나실 때에 “벧엘의 하나님”이라 스스로 칭하였다(창 31;13).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셨던 계약백성의 조건은 이제 야곱에게로 넘어갔고 하나님은 야곱을 벧엘로 불러 제단을 쌓고 그의 하나님이 될 것을 약속하였다(창 35:1).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사람들의 가나안 정복 당시 요셉 자손이 벧엘을 배분받아(수 16:1) 정복했다(삿 1:22). 요셉 자손의 땅은 에브라임 산지와 베냐민 지파 사이의 땅이었기에 이스라엘 왕국이 남북으로 갈라질 때 벧엘은 두 나라 사이의 경계지역이 될 수밖에 없었다. 솔로몬 이후 북왕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은 벧엘의 종교적, 지형적 입지를 이용하여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다.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의 땅으로만 구성된 남왕국 유다의 르호보암과는 달리 여로보암은 나머지 10지파의 후원을 받았지만 여전히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매년 제사를 드리러 가는 이들을 막아야만 했다. 결국 그는 벧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조상 야곱에 의해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으로 불렸다는 종교적 입지와 더불어 북왕국 이스라엘의 마지막 도시라는 지형적 입지를 사용하여 이곳에 금송아지를 만들고 제사를 지내도록 종용하였다(왕상 12장). 하나님의 거룩한 범죄의 장소로 저주받은 장소가 되었다(암 3:14; 4:4; 5:5). 요시야의 종교개혁 당시 벧엘의 제단은 산산이 부서졌고 (왕하 23:15) 더이상 역사 속에 등장하지 않았다.

로빈슨은 아랍어 베이틴(Beitin)의 마지막 ‘-인(in)’이 히브리어 ‘엘’이라고 받아들여 벧엘의 어원이 남아 있다고 보았다. 엘이 인으로 바뀌는 것은 자주 목격되는 바였기에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고고학적 발굴의 결과는 전혀 달랐다. 베이틴에서는 십자군 시대에 세워진 교회의 흔적은 발견되지만 구약시대의 어떤 흔적도 아직까지 발견된 바 없다. 학자들은 아직 벧엘의 위치가 밝혀진 것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베이틴보다는 오히려 베이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엘-비레(El-Bireh)라 불리는 언덕이 오히려 벧엘일 확률이 높다고 보고 있다. 엘-비레 역시 어원상 벧엘과 유사하다. 안타까운 것은 벧엘이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구역(West Bank)에 속해 있어 발굴이 활발히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이다. 그 위치를 밝히는 데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엣-텔=아이

1838년 로빈슨이 엣-텔이라는 언덕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한치의 의심도 없이 이곳을 아이라 생각했다. 이후 학자들 역시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엣-텔은 아랍어로 폐허라는 뜻인데 히브리어 아이 역시 폐허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여호수아 8장 전체에 등장하지만 불에 타 폐허가 된 후 더 이상 성서에 등장하지 않는다.

여호수아는 여리고를 점령한 후 아이에 정탐꾼을 보냈다. 여리고에 비해 규모가 작은 아이를 우습게 본 정탐꾼들은 2000∼3000명만 보내도 거뜬하게 이기리라 장담했지만 패배하고 말았다. 그 이유는 아간이라는 이가 여리고를 점령하면서 전리품을 취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겼기 때문이었다. 아간을 정죄한 후 아이에서의 전쟁은 승리로 끝났다. 여호수아는 아이를 불살라 영원한 무더기로 만들었고 아무도 살지 않는 황폐한 지역으로 남았다(수 8:28).

그러나 벧엘과 마찬가지로 현대 고고학은 엣-텔이 아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고 있다. 물론 엣-텔에서 폐허의 흔적이 발견된 것은 사실이다. 27에이커에 달하는 상당한 규모의 고대도시는 망대로 사용된 반원형 탑들이 있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도시의 중앙에는 신전이나 궁전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공공건물도 발견되었다. 하지만 이 도시는 주전 3000∼2300년경 가나안 초기 청동기시대의 도시로 여호수아의 시대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학자들은 다방면으로 해답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성서적 스토리가 후대에 쓰인 것이기 때문에 이미 폐허의 전설이 있는 장소를 성서에 삽입했다고 말하고 있다. 또 다른 학자들은 벧엘의 스토리와 혼합이 되어 다루어진 이야기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브라이언트 우드(Bryant Wood)에 의하면 벧엘이 베이틴이 아닌 엘-비레로 추측되는 것처럼 아이도 역시 엣-텔의 왼쪽에 위치한 황폐한 언덕인 키르벳 엘-마카티르(Khirbet el-Maqatir)일 확률이 높다고 보고 있다. 최근 키르벳 엘-마카티르에서 발굴이 시도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이곳이 아이라는 확신을 보여줄 만한 자료가 충분하지는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우드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어 앞으로 벧엘과 아이의 정확한 위치가 밝혀지고 발굴이 이뤄질 날을 기대해본다.

공동 집필

임미영 박사

<평촌이레교회 협동목사, 서울신학대학교 한신대학교 장신대학교 강사>

김진산 박사

<새사람교회 공동목회, 서울신학대학교 호서대학교 건국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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