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가설극장의 유랑배우 되려고? 기사의 사진

“2002년 대선 판도 뒤흔든 김대업,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유혹한 폭로정치 풍토”

정례적 선거는 ‘주권재민’이란 민주원리의 실효성과 그 현실적 작동을 담보하는 제도다. 아울러 정해진 임기동안 위상 권한 지위를 승리자 측에 보장해주는 제도적 울타리로서의 의의도 갖는다. 이 전제가 부정되면 정치는 상시적 혼란을 면하기 어렵다.

가끔 패배자 측이, 선거 결과를 부정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불복심리를 부추김으로써 당선자와 승리정당의 동력을 빼앗고 심하게는 마비시키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이런 저항이 효과를 내게 되면 정부와 대의기구는 조롱거리, 무기력증 환자로 전락하고 만다.

촛불집회는 비판자들의 신무기다. 성당의 촛불은 ‘어둠을 밝히고 미망을 걷어내는’ 광명을 상징한다. 반대로 광장의 무리 지어진 촛불은 대중적 불만과 저항의, 자극적이고 위압적인 표현이 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북악산에 올라 촛불 군중이 부르는 ‘아침이슬’을 들으며(따라 불렀다기도 하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을 만큼….

지금 다시 군중의 촛불이 주말마다 서울광장을 밝히고 있다. 국정원을 해체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하라고 한다. 민주당도 어느새 고정 멤버가 됐다. 제1야당이 사실상 ‘대선 불복’에 나선 것이다. 패배를 결연히 자책하던 태도는 간곳이 없다. 정권을 도둑맞았다고 말하고 싶어 안달하는 빛이다.

시위야 민주사회의 일상적인 현상일 수 있다. 문제는 야당의 지도부와 소속 국회의원들이 광장 속 군중의 일원이 된 사실이다. 당초엔 국정원 국정조사 파행에 항의한다고 했다. 그게 여야합의로 해결되자 이번엔 양자회담, 이어서 세법개정안을 트집 잡아 눌러 앉았다. 촛불로 정권을 뒤엎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일까?

민주당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이 두 사람을 국정조사 청문회의 증언대에 세우면 ‘국정원의 개입에 의한 대선 부정’의 전모가 드러날 것처럼 여론을 몰아왔다. 그 결과 형사피의자로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TV 생중계 되는 청문회 증언대에 세우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는 이실직고하라고 윽박질렀다.

증인선서 거부는 이들의 합법적 방어수단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야당 의원들은 ‘뻔뻔하다’ ‘국민을 모독했다’고 호통쳤다. ‘진골 TK’라고 비아냥거리는 의원도 있었다. 일부 언론은 증인들이 ‘국정조사를 농락했다’고 개탄했다. 또박또박 잘 대답하는 것 같던데 야당과 야성향 언론으로서는 당당한 답변 태도가 불쾌했던 듯하다.

단언컨대 국정조사에서 새롭게 밝혀질 진실은 없다. 이 의혹사건을 보는 여야의 시각은 정반대다. 정파적 성향의 시민들 역시 상반되는 판단을 내려놓고 있다.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정당이나 정파적 시민들의 생각이 바뀔 가능성은 거의 제로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장외투쟁 목표를, 큰 소리로 대선의 적법성, 정부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데 뒀다는 뜻이 된다. 아닌가?

민주당은 투쟁의 강도가 모자라서 여론 지지율이 바닥을 긴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이를 지도부의 리더십 강화 계기로 삼으려는 의도를 엿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투쟁 강도를 높여도 지지율은 회복될 기미가 없고, 리더십은 갈수록 취약해지는 분위기다. 이러다 퇴각(그 표현이 싫으면 회군으로 하든가)의 기회를 놓치면 가설극장의 유랑배우가 되고 말 것임을 왜 못 깨닫는 것일까?

정당정치, 대의정치에는 완전한 승리나 패배가 있을 수 없다. 경기는 계속되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 때 ‘병역비리 은폐 대책회의’가 있었다고 주장해 대선판도를 뒤흔들었던 김대업이라는 사람, 이번에는 ‘폭로 사전 모의와 50억원 대가설’을 들고 나왔다. 당시엔 민주당 측이 ‘의인’으로까지 떠받들며 잘 이용했지만 지금 그게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이다.

이런 정치, 계속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폭로의 정치, 누명 씌우기 정치, 그리고 거리의 정치를 버리고 국회로 돌아갈 일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여부는 법원의 판단에 맡기면 된다. 미진하면 그때 국조를 실시해도 늦지 않다. 이것이 순리의 정치라고 믿는다.

이진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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