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獨 기업재단, 사회문제 해법 제시… ‘싱크탱크’ 역할 기사의 사진

‘재단의 나라(Land der Stiftungen).’ 독일을 가리키는 여러 별칭 중 하나다.

독일 내 재단은 7만개에 달한다. 재단의 목적과 설립 주체는 다양하지만 상당수는 기업을 모태로 하는 기업재단들이다. 그중에서

도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곳으로는 유럽 최대의 종합 미디어그룹 베텔스만이 설립한 ‘베텔스만 재단’, 세계 1위 자동차 부품기업 보쉬의 ‘로버트 보쉬 재단’, BMW가 세운 ‘BMW헤르베르트콴트 재단’ 등이 꼽힌다.

◇기업 사회공헌의 진화, 싱크탱크형 재단=한국에도 많은 기업들이 재단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 기업재단이 특별한 것은 이들이 장학금을 전달하고 사회 빈곤층을 지원하는 자선사업 수준의 사회공헌에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싱크탱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들 기업재단들은 사회 각 분야의 주요 이슈와 문제들을 파악한다. 전문가와 각 분야 리더들을 중심으로 토론과 연구활동을 벌여 해결방법과 개선 아이디어를 도출한다. 이렇게 연구·개발(R&D)한 정책을 정부에 조언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곳이 베텔스만 재단이다.

베텔스만 재단은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 촉진’을 목표로 내걸고 있다. 재단은 정치, 외교, 교육, 문화, 헬스케어 시스템 등 사회 전방위에 걸쳐 그 시기의 핵심 이슈들을 다룬다. 지난달에는 김황식 전 국무총리를 초청해 ‘북한, 어디로 가는가’라는 주제로 한반도 관련 포럼을 열기도 했다.

이 같은 역할을 위해 베텔스만 재단은 여느 학술재단 부럽지 않은 연구인력을 갖추고 있다. 박사급을 포함해 직원 300여명 중 프로젝트를 이끄는 프로젝트 매니저만 185명이다. 이들은 올해 60여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재단이 최근 관심을 쏟는 분야는 고령화 시대에 따른 평생학습, 복지국가와 사회적 시장경제, 이민정책 개선 등 굵직한 것들이다.

1960년대 파산직전의 BMW를 회생시킨 대주주의 이름을 딴 콴트 재단 역시 사회 변화와 혁신에 대해 학계와 공동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특히 ‘영 리더스 포럼’과 ‘뮌헨 경제 서밋’ 등 세계 각국의 지식인과 전문가, 리더들이 모여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를 만들고 있다. 2008년 서울에서 열리기도 했던 영 리더스 포럼의 경우 여기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재단을 통해 실제로 현실에 적용해 보는 시뮬레이션 과정을 거치고, 효과가 입증되면 재단의 지원을 받아 세계로 보급된다.

한편 BMW그룹의 경우 콴트 재단과는 별도로 2011년 한국에 ‘BMW코리아 미래재단’을 설립했다. 재단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미래를 이끌 인재 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동안 친환경 리더십 체험 캠프, 영 엔지니어 드림 프로젝트, 대학생 창업 경진대회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사회와 인류에 기여” 확고한 설립자의 의지=이들 재단의 출범과 성장에는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는 데 각별한 신념을 가졌던 창업자와 최고경영자(CEO)의 의지가 작용했다.

보쉬 그룹의 설립자인 로버트 보쉬는 스스로를 ‘사회적 기업가’라 여길 만큼 사회공헌에 대한 남다른 비전을 가진 인물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와중에 전쟁고아들을 위해 당시 40만 마르크(약 3억원)를 기부하고, 새로 지은 공장을 병원 건물로 내줬다. 또 자선단체를 세워 기술전문대학에 1000만 마르크(약 75억원), 병원 설립에 850만 마르크(약 64억원)를 지원했다. “사람들의 도덕, 건강, 교육 개발에 힘써야 한다”는 그의 유언에 따라 1964년 과학과 건강, 국제 이해, 교육 분야에 집중하는 보쉬 재단이 설립됐다.

1977년 베텔스만 재단을 세운 이는 4대 CEO 라인하르트 몬이다. 그는 찬송가와 기독교 서적을 만드는 작은 출판사로 시작한 가업을 신문, 잡지, 음반, 영화, TV, 라디오에까지 확장시켰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영향을 받은 가풍에 따라 평소 ‘부(富)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는 2차대전 때 연합군의 포로가 돼 수용소 생활을 한 경험을 통해 정부가 목표를 잘못 설정할 수 있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고민했다고 한다. 이런 생각과 경험으로부터 지금의 베텔스만 재단처럼 ‘정부와 별도로 각종 사회문제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기관’을 구상했다는 것이다.

◇재단은 그룹 계열사? 재단이 그룹의 주인!=이들 3개 재단은 법적으로 모그룹과 완전히 분리돼 있다. 뿐만 아니라 보쉬 재단의 경우 재단이 그룹 주식의 92%를 소유한 최대 주주다. 7%는 보쉬 가문이, 그리고 나머지 1%는 그룹의 소유로 돼 있다.

베텔스만 재단도 마찬가지다. 재단이 그룹의 지분 77.6%를 가지고 있고, 몬 가문이 19.1%, 라인하르트 몬 재단 등 그룹과 관련된 다른 재단들이 3.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재단이 그룹의 주인인 것이다.

그렇다고 재단이 회사 경영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회사 역시 재단에 일체 간섭할 수 없다. 재단이 그룹의 대주주이기 때문에 그룹이 이윤을 낼수록 재단의 재정도 함께 탄탄해지는 효과가 있다. 재단의 자금이 충분하므로 정부나 외부 인사의 후원금을 받을 이유도 없다. 이런 소유구조 덕분에 결과적으로 재단은 자율성과 탄탄한 재정적 뒷받침, 외부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

이들 재단이 독일 사회의 지지와 함께 그 영향력을 인정받고 있는 데는 이처럼 정부와 모그룹으로부터 철저하게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는 부분이 크다. 이들은 모기업과 관련된 정책 수립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유로 경제 분야에 치우친 연구를 수행하지도 않는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세운 경제연구소가 한국을 대표하는 싱크탱크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권혜숙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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