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안창남] 복지 그리고 세금 기사의 사진

이번 세법 개정 파문이 국민들에게 준 학습효과는 ‘복지=세금’이라는 것을 일깨워준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복지정책과 증세정책이 따로 놀았다. 복지정책은 주로 진보진영에서 주장하고 증세정책은 보수진영에서 반대를 한다. 재미있는 것은 지난 대통령 선거의 ‘증세 없는 복지사회구현’이라는 구호다. 진보의 표도 얻고 보수의 표도 안심시키는 걸작이었다.

그런데 정부가 당초 제출한 세법 개정안을 보면 증세를 하지 않는다고 해놓고선 연봉 3450만원부터 5500만원 사이의 중간계층 근로자도 추가적인 세금 부담을 하라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고소득자의 추가적인 세금 부담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것을 보고는 허탈감과 박탈감에 조세 저항의 움직임을 보였다. 이들의 조세 저항에 정치권이 화들짝 놀라서 연봉 5500만원 이하 근로자들의 추가적인 세금 부담은 없는 것으로 했다.

그러나 파문은 진정되었을까. 아니라고 본다. 그 머리 좋은 기획재정부 세제실 공무원들이 몇 달간 밤을 새우면서 준비한 세법 개정안이 대통령 한마디에 바로 고쳐질 정도라면 뭔가 이상하다. 고쳤으면 미안한 기색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들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당당한 모습이다. 이래서 더 실망스럽다. 또다시 대통령 말씀이면 다음 날 또 고쳐올 것인가?

세제는 어느 정책보다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이 높아야 한다. 국민들 호주머니 속에서 돈을 꺼내는 것이다. 아무리 신중하고 진중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이 세법 개정인데 너무 경박하다는 느낌이 든다.

정부는 세 부담이 늘어나는 것과 증세는 다르다는 말을 하고 있지만, 이게 궤변으로 들리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국민 수준을 너무 얕잡아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사실 국민 대부분은 유럽 수준의 복지를 하기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함을 알고 있고 그리고 세금을 납부할 의향도 있다고 본다.

정치권은 증세란 세율 인상이나 추가적인 세목의 신설만을 의미한다고 하지만, 국민들은 내 주머니에서 추가적으로 돈이 나가는 것이 증세라는 것이다. 이웃나라의 침략에 대한 정의를 가지고 떠드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고 본다.

하여, 모두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빚을 내어서 복지를 하는 것은 누구나 어느 정부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폐해는 고스란히 우리 후손들이 뒤집어쓴다. 지금 남유럽의 경우가 그렇다. 사실 이번 세법 개정안의 방향성은 좋았다고 본다. 단지 그와 같은 개정을 통해서 얻을 세수입만으로는 복지재원에 턱없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그 증세 대상이 주로 근로자의 소득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지향할 복지수준을 결정하고 거기에 맞추어서 증세를 했으면 한다. 유럽국가 수준의 복지라면 그들의 조세부담률만큼 우리나라도 증세를 하여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과감하게 복지정책을 수정해야 한다. 이 부분은 정치권의 몫이다. 방향이 정해지면 거기에 맞춰서 세법이 개정되면 된다.

그렇지만 명심할 것은 우리나라는 복지 이외에도 통일이라는 숙제가 있다. 이 비용도 준비해야 한다. 그렇다면 국가의 재정은 적어도 균형예산이든 흑자예산으로 가야 한다. 가장 좋은 사회는 사도행전 4장 34절에 ‘그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세금)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복지)’고 본다.

이를 우리나라 헌법 제1조에서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 공화란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복지를 받는 자보다 복지재원을 감당하는 자가 더 보람된 인생이 아닐까 한다. 그 이유는 하늘이 주신 달란트를 최대한 사용한 자이기 때문이다.

안창남 교수(강남대학교 세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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