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황태순] 비정상의 정상화 기사의 사진

모레면 박근혜 대통령 취임 6개월이 된다. 60개월 임기의 10분의 1에 해당한다. 100m 달리기에 비유하자면 10m를 뛴 셈이다. 스타팅블록을 박차고 나와 일단 자세를 곧추세우는 단계다. 스타트 과정에서는 고도의 긴장감이 감돈다. 혹시 부정출발을 하지는 않을까, 뛰쳐나가다 엎어지지는 않을까, 온몸이 경직되고 입안은 바싹바싹 마른다.

박 대통령은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슬로 스타터다. 반응성이 상당히 늦은 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부지런하지도 경쾌하지도 않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이 임기응변에 능하고 치열한 것 같지도 않다. 박 대통령의 정치역정을 살펴보면 신중하다 못해 답답하기까지 하다. 자기 확신이 지나치게 확고해서 고집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지난 2월 25일 박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을 통해 ‘새로운 희망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를 쌍끌이로 경제부흥을 이루고, 국민 맞춤형 복지 패러다임으로 국민행복을, 문화적 가치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3월 16일 ‘평화 정착과 통일기반 조성’을 추가하여 4대 국정 기조를 마련했다.

지난 6개월을 돌이켜보면 막상 손에 딱 잡히는 그 무엇이 없다. 정부조직법의 지각 개정으로 뒤늦은 정부 구성, 개성공단을 둘러싼 133일의 피 말리는 줄다리기,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발언 논란과 사초(史草) 실종,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야당의 장외 농성과 촛불시위, 보편적 복지와 증세 논란, 각종 문제점들만 백화제방(百花齊放)식으로 터져 나왔다. 박 대통령은 2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새 정부는 비정상적인 관행을 바로잡고 기본이 바로 선 나라를 만드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개성공단 문제를 두고 누차에 걸쳐 강조했던 ‘비정상의 정상화’와 같은 맥락이다.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다만 과거 정권과 무조건 차별화하는 ABP(Anything But Past)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역대 정권 모두가 지난 정권과 차별화를 통해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곤 했다. 전두환정부의 ‘선진조국 창조와 정의사회 구현’, 노태우정부의 ‘보통사람의 시대’, 김영삼정부의 ‘신한국 창조와 역사 바로 세우기’, 김대중정부의 ‘제2건국’, 노무현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이명박정부의 ‘기업 프렌들리’도 기실 전 정권을 격하시킴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 사례다. 새 정부가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는 백번을 칭찬해도 모자람이 없다. 문제는 그 실행 과정에서 애꿎은 국민들이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사실상 강요당하는 데 있다. 지금 당장도 경제민주화의 명분 아래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하니 정작 한숨소리는 중소기업에서 터져 나온다. 정책의 의도와 실천 과정의 부작용 간 괴리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MB정권 핵심 참모를 지낸 지인에게 들은 말이다. “집권 첫 해는 (관료들에게) 전화를 하면 바로 받더니, 2년 차에는 벨이 한두 번 울려야 받더라. 3년 차에는 슬슬 안 받기 시작하다, 4년 차가 되니 아예 콜백도 없다.” 권력이 그런 것이다. 지금 당장은 천하를 다 집어삼킬 것 같지만 결국 관료집단에 얹힌 5년짜리 시한부 정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조바심을 내서는 안 된다. 내가 한 약속을 내 임기 중에 끝내겠다는 과욕은 결국 화를 부른다. 5년 단임제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독단은 더더욱 경계해야 한다. 후임자가 손대지 못하게 대못을 치는 일은 필연적으로 더 큰 부작용만 초래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이미 체득한 바다. ‘비정상의 정상화’, 박 대통령의 문제인식은 맞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하는데 있어서 두 가지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첫째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이다. 돌 하나라도 옮길 수 있으면 그로 족하고 방향을 정확하게 잡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는 상선약수(上善若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황태순 정치평론가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