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송세영] 한국 교회와 대마도 기사의 사진

8월의 대마도는 뜨거운 햇빛과 푸른 바다, 울창한 숲의 섬이었다. 농사를 짓기엔 척박해 보였지만 청정한 자연환경은 감탄을 자아냈다.

대마도는 동시에 잊을 수 없는, 슬픈 역사의 섬이었다. 유학자 면암 최익현은 대한제국시절 일제에 저항하다 이곳까지 유배돼 목숨을 잃었다. 고종의 사랑을 한 몸에 받다 12세 때 일본으로 끌려갔던 덕혜옹주는 대마도주와 강제 결혼한 뒤 정신질환과 딸의 자살, 이혼 등으로 고통 받으며 비극적 삶을 살았다. 임진왜란 때 납치돼 고향땅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 묻힌 이름 없는 조선왕실 여인의 비도 남아 있다.

한·일 관계의 징검다리인 그곳

한국과 일본의 친선과 우호, 교류의 흔적도 많았다. 백제 왕인 박사가 일본으로 건너가며 들렀던 항구는 와니(왕인)우라로 불리고 있다.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차례 일본을 방문한 조선통신사가 에도 막부로 가는 길에 머물렀던 곳에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대마도 사투리 속에는 우리 말 단어가 300개 정도 남아있는데 우리와 같은 지게를 사용하고 이름도 ‘지케’라 부른다. ‘친구’란 말도 쓰는데 우리말과 뜻이 같다.

대마도 주민들은 한·일 교류의 자취가 남은 곳마다 기념비를 세워놓았다. 첫 기념비로 1986년 ‘대한인 최익현 선생 순국비’를 세울 때는 항일인사의 비를 세우는 것에 대한 반발이 적지 않았지만 대화로 설득해냈다. 이들은 2011년 12월 ‘통신사 황윤길 현창비’까지 모두 10기의 기념비를 세웠다. 우려스런 것은 최근 한·일관계가 악화되면서 이들의 목소리가 소수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마도 주민들은 몇 년 전 일본 본토에서 반한 시위대가 찾아왔을 때는 쫓아내기까지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공공연히 반한감정을 드러내는 주민들이 생겨나고 있다.

더 걱정스런 것은 대마도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들의 태도다. 하루 평균 500∼600명씩 찾아오는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대마도는 부산항에서 70분이면 올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외국, 때론 3만원으로 당일 왕복할 수 있는 저렴한 관광지다. 시내 마실 가듯 국경을 넘어와 배삯을 벌충한다며 면세점 쇼핑에 매달리고, 파친코 도박에 빠져든다. 대마도가 1회성 관광지로 소비되는 한 한·일관계의 가교 역할을 기대하긴 힘들다.

지난해 4월 첫 선교사 파견

한국 교회는 그동안 대마도를 주목하지 않았다. 인구가 적고 낙후된 대마도보다 일본 본토 선교에 주력했다. 대마도에 거주 선교사를 공식 파송한 것은 지난해 4월이 처음이다. 현재 사역중인 첫 대마도 선교사도 이름만 파송일 뿐 물적 재정적 기반이나 조직도 없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2년 가까운 준비와 기도 끝에 공식 파송을 허락받은 것만도 감사할 정도로 대마도에 대한 한국교회의 인식수준이나 관심은 낮았다.

대마도 선교는 이제 시작 단계다. 월세로 임차한 사택을 대마도선교센터로 삼아 한국어교실을 운영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 희망적인 것은 길지 않은 시간이었는데도 주민들이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흔히 ‘선교사의 무덤’이라 불리지만 대마도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지경학적 조건과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한국과 우호 친선을 원하는 이들이 많고 한국어를 배우려는 이들도 늘고 있다.

미약하지만 첫 걸음은 뗐다. 한국교회의 관심과 기도가 1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져 대마도가 복음의 땅, 평화의 섬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송세영 종교부 차장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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