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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만 칼럼] 알 만큼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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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적으로 보면 지구를 떠받치고 있는 낙타와 캥거루와 코끼리는 불쌍하다”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논란을 지켜보면서 참 소란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하나의 의혹이 생기면 밝힐 것은 밝히고, 잘못 제기한 의혹은 잘못한 것으로 정리해 앞으로 나가는 반성과 합의의 미덕을 잃은 지 꽤 되는 것 같다. 의심은 확산되고 갈등은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면서 억지를 부리고, 분명해 보이는 것을 왜곡하고, 편가르기에 빠지는 비겁함을 쉽게 행사한다. 민주사회의 양식에 비추어 해서는 곤란한 행위들이 간단하게 이루어진다.

그런 와중에서 중심은 희미해지고 의혹과 물타기가 득세한다. 욕설과 근거 없는 폭로, 고소와 맞고소 같은 비행(卑行)이 난무한다. 동전 몇 닢을 위하여 악다구니를 놓던 사람들이 하던 방식이다. 국회를 비롯해 국정원 경찰 검찰 등 관련 기관의 논전은 그렇다 치더라도 인터넷 공간에서 벌어지는 댓글 논쟁은 또한 무엇인가.

인터넷을 달구는 책임 없는 주의주장을 철없는 애들의 바투보기 쯤으로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요즘 댓글놀이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선남선녀의 얼굴을 하고 있다. 누구 못지않은 양식과 애국심을 갖고 있음을 얘기한다. 그러나 그들의 글은 선남선녀의 것이 아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몰아치는 욕설과 섬뜩할 정도의 지역 폄훼, 죽기살기 식으로 늘어지는 이념 편향으로 가득한 암흑의 바다가 펼쳐진다.

이것이 우리 사회 선남선녀의 내심인가 생각하면 난감하다. 민주사회 성숙의 척도는 남이 보는 광장에서가 아니라 홀로 다스리는 공간의 수준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대선 개입 여부는 별도로, 이런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국가의 최고급 정보를 다루는 권위와 신뢰의 국정원이 조직을 꾸려 댓글 전략을 펼쳤다는 자체만으로도 유감이다. 탁한 구석이 있는 국정원은 시민들의 지지를 받는 맑은 강으로 나와야 한다.

미국 작가 제임스 사이어가 쓴 ‘코끼리 이름짓기’에 보면 인도 전래동화를 각색한 내용이 나온다. 한 소년이 학교에서 지구가 우주에 떠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질문한다. 아빠, 지구가 어떻게 공중에 떠 있나요? 무엇이 이 세계를 떠받치고 있지요? 아빠는 대답한다. 얘야, 이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낙타란다. 아들은 궁금하다. 낙타가 세상을 떠받치고 있다면, 그 낙타를 받치고 있는 것은 무엇이죠? 응, 낙타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캥거루란다. 그러면 캥거루는 무엇이 받치고 있죠? 캥거루를 받치고 있는 것은 코끼리야. 그러면 코끼리는 무엇이 받치고 있죠? 대답할 밑천이 떨어진 아빠는 소리 지른다. 그 밑으로는 밑바닥까지 모조리 코끼리야!

당파적 작은 현실에 얽매이면 큰 사실은 오리무중이 된다. 논란을 분화시켜 물고 늘어지면 그 부분은 사실인 것 같지만 전체적으로 사실이 될 수 없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부분적으로 보자면 지구를 떠받치고 있는 낙타와 코끼리는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러나 조금은 다행인 것이, 이렇게 난장판이 펼쳐져 문제가 복잡해지면 해질수록 사람들은 무엇이 사실인지 그 윤곽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국정원은 무엇을 했는지, 야당의 국정원녀 인권유린은 어떤 것인지, 경찰은 어떻게 움직였는지, 심야에 수사 발표를 한 배경은 무엇인지, 전화를 한 이유는 무엇인지, 검찰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여당은 어떤 속셈을 갖고 있었는지, 야당은 지고 나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 만큼은 알고 있다.

이성적 패턴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싸움은 여태까지만으로도 충분하다. 검찰의 조사를 믿고, 편가르기의 부정적 유산을 청산해 주기를 기대한다. 문제를 미봉하자는 말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사회갈등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종교분쟁국인 터키 다음으로 심각하고,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연간 82조∼246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순한 흐름으로 가야 한다. 그 순조로운 흐름을 만드는 사람이 지도자다. 국민들은 누가 그런 사람인지를 보고 있다.

임순만 편집인 겸 논설실장 s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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