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걸기-한승주] K뮤지컬의 두 얼굴 기사의 사진

최근 일본 도쿄에 다녀왔다. 한국 드라마와 K팝에 이어 일본에서 인기몰이 중인 K뮤지컬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서다. 그곳에서 만난 K뮤지컬은 두 얼굴, 뚜렷하게 명암이 갈렸다. 먼저 잘되는 집안 얘기부터.

지난 10일 도쿄 분카무라 오차드홀 무대에 오른 뮤지컬 ‘삼총사’ 현장.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과 비슷한 규모의 2000여석이 빈틈없이 꽉 찼다. 관객 대부분이 40∼50대의 아줌마 팬. 한국 뮤지컬을 보기 위해 일년에 수십 번 한국을 오갈 정도의 극성팬이다. ‘삼총사’만 50번 이상을 봤다는 이도 만났다.

이들은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도 끝나고, 무대에 불도 꺼졌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주인공 달타냥 역을 맡은 ‘준케이’(2PM)를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을까 해서다. 2000여명의 팬들이 10분 넘게 ‘준케이’를 열렬히 외치며 혹시라도 그가 무대에 나올까를 기다리는 이 장면, 흡사 1990년대 ‘H.O.T’ 팬들이 콘서트가 끝난 후 ‘오빠’를 외치며 기다리던 풍경과 닮았다.

이날 그토록 기다리던 준케이는 ‘매정하게도’ 다시 나오지 않았고, 이들은 쓸쓸히 공연장을 빠져나갔다. 일본에서 총 25회 공연된 ‘삼총사’는 시작 전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전 세계 2위 규모의 공연 시장인 일본에서 ‘삼총사’의 흥행 목표는 5위다. 한국인이 일본에서 한국어로 하는 뮤지컬의 인기가 이 정도라니 대단한 일이다.

또 다른 풍경 하나. 도쿄 최대 번화가 롯폰기에 위치한 아뮤즈뮤지컬시어터. 지난 4월 개관한 이곳은 한국뮤지컬 전용관으로 당시 큰 주목을 받았다. 창작뮤지컬이 문화콘텐츠 수출 동력이 되리라는 장밋빛 전망이 쏟아졌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지난 9일 무대는 경상도 종갓집을 배경으로 한 창작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 900석 규모의 공연장은 절반 이상 텅 비어 있었다. 그동안 ‘카페인’ ‘싱글즈’ ‘풍월주’ 등이 무대에 올랐지만 흥행은 쉽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극장 측은 최근 한국뮤지컬 전용관 운영 계획을 백지화하고, 내년부터는 서구 뮤지컬도 올리기로 결정했다.

‘삼총사’와 ‘형제는 용감했다’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아이돌’의 출연 여부다. 일본에서 한국 아이돌 그룹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동방신기’ ‘JYJ’ ‘슈퍼주니어’ ‘샤이니’ 등 현지에서 활동한 지 오래된 그룹은 물론 ‘2PM’처럼 비교적 최근에 진출한 그룹의 인기도 꽤 높다. 그리고 이들 멤버가 출연하는 뮤지컬에는 관객이 몰린다. ‘삼총사’에는 준케이뿐 아니라 일본에서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슈퍼주니어의 규현도 나왔다.

다시 생각해본다. 공항에서 막 도착한 듯 여행용 가방을 끌고 공연장 로비를 서성이던 그 많던 일본 관객. 그들이 몰렸던 뮤지컬에는 아이돌 또는 대형 한류 스타가 있었다. 안재욱이 나왔던 ‘황태자 루돌프’, 김준수(JYJ)의 ‘엘리자벳’, 키(샤이니)와 규현이 나왔던 ‘캐치 미 이프 유 캔’ 등이 대표적인 예다. 공교롭게도 우리 창작뮤지컬은 없다.

아이돌이 없는 K뮤지컬, 아직 일본에서는 관심 밖이다. ‘삼총사’에는 노래 잘하는 뮤지컬 배우들이 대거 나온다. 하지만 만약 여기에 아이돌이 없었다면 지금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우리는 실력과 작품성 때문이라 믿고 있지만 실은 K팝 한류에서 파생한 ‘착시효과’였던 건 아닐까. K뮤지컬 인기에 대한 냉정한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승주 문화생활부 차장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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