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폭력 냄새 진한 ‘이석기의 RO’ 기사의 사진

“이 시대 대한민국에서 일으킬 수 있고, 일어나야 할 혁명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석기 의원과 그 주변 인물들은 부인하는 모양이지만, 국정원이 제시한 녹취록에 따르면 ‘RO’라는 조직이 있다. Revolutionary Organization, 글자 그대로 혁명조직이다. 가입 시 ‘우리의 지도자=비서동지, 우리=혁명가’라는 질문 답변의 절차를 거친다는 것으로 미루어 ‘종북’집단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그런데 무엇을 지향하는, 혹은 무엇을 위한 혁명인지, 그게 불분명하다.

물론 RO가 감행하려는 혁명의 당위성, 역사성, 의미, 목적, 목표 등은 구성원 모두가 이미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 터이다. 그래서 회합 시에는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서만 강의 및 권역별 토의가 이뤄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도 궁금하다. 이 시대의 대한민국에서 일으켜야 할 혁명이란 무엇일 수 있을까?

요즘 흔히 강조되는 지식혁명, 경영혁명, 과학기술혁명 이런 것은 아닐 게 뻔하다. 그런 혁명이 ‘비서동지’와 상관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선진민주국가 국민으로서 정신과 행동양식을 한 차원 더 높이기 위한 의식혁명일 것 같지도 않다. 이를 위해서라면 80만∼90만원짜리 외제 장난감 총, 평택 유류기지와 혜화전화국 등의 정보를 공유하는 게 왜 필요하겠는가.

이도저도 아니라고 할 때는 북한군이 남침을 해 오면 이쪽에서 물리적 심리적 수단을 동원해 호응함으로써 김정은 집단으로 하여금 이른바 ‘국토완정’을 이루게 하는 일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1950년대의 빨치산은 실패했지만 21세기의 RO는 성공할 것이다.” 그런 신념일까?

북한이 ‘전시사업세칙’이라는 것에 ‘남조선 애국 역량의 지원 요구가 있거나 국내외에서 통일에 유리한 국면이 마련될 경우’를 전시선포 시기로 포함시킨 것을 믿고 선제적으로 일으키는 무장폭동이나 테러를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겠다. 대한민국을 둘러엎는데 성공하면, 북한이 그 공을 인정해서 ‘남조선’ 통치권을 부여해줄 것을 기대하면서? 이 의원을 ‘남쪽의 수(首)’ ‘우리의 수’라고 부른다지 않는가.

꿈을 꾸는 것이야, 각자의 자유다. 달걀 하나를 품고 언젠가 소와 바꿀 날이 올 것을 기대하든, 토끼 한 마리 안고 대목장주를 꿈꾸든 누가 말리랴. 문제는 그 공상 혹은 망상이 현실 세계로 뛰쳐나왔다는 데 있다. 자신이 태어나 자란 곳, 자신을 키워 국회의원의 지위까지 누리게 한 이 사회를 폭파시켜 ‘비서동지’의 영광을 그 화염 속에 드러내 보이겠다는 ‘음모’를 다중과 함께 꾸몄다면 국민적 단죄와 징벌을 면할 수가 없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석기의 RO’에서 폭력의 냄새가 난다는 사실이다. 그는 문제의 강연에서 “한 자루 권총 사상으로 정신 무장해 미 제국주의와 정면으로 붙어 통일조국의 새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런 과정에서) 많은 인명 피해가 날 것”이라고 했다는 언론 보도다. 혁명에는 폭력이 수반되게 마련인데, 뭘 새삼스레 놀라느냐고 하겠는가. 혁명의 폭력은 자기정당화 자기미화로 인해 더없이 잔혹한 양상을 띤다. 그래서 무서운 거다.

인류역사상 ‘혁명’으로 일컫는 대사건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를, 어떤 형태로 요구했는지를 돌아보는 것만으로, 더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혁명의 양심’으로 불렸던 로베스피에르조차 피에 굶주린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가. ‘RO’는 이미 인명희생의 불가피성은 물론이고, 살상행위의 정당성까지 미리 주장하고 있다. 말하자면 민족해방을 위해 혁명을 일으키고 혁명을 위해 민족을 살육할 수도 있다는 식이다. 조국통일 국토완정의 핑계로 전쟁을 일으켜 겨레 수백만명을 희생시켰던 김일성의 교의에 따라!

더욱이 ‘이석기의 RO’는 이성보다는 감성이 지배하는, 일종의 광신적 사교집단 같은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런 집단이 영웅주의에 빠진 교주, 즉 수(首)의 선동에 따라, 폭동을 일으키고 이에 앞서거나 뒤이어 북한의 도발이 겹친다고 할 경우 그 피해와 파장은 엄청날 수 있다. 그 때문에 황당한 시나리오에도 놀라게 되는 것이다.

이진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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