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김현] 시니어 판사가 필요한 이유 기사의 사진

미국 연방법원 판사는 종신제다. 그런데 판사에 따라선 은퇴는 하고 싶지 않으나 풀타임 근무가 힘들어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싶어 하므로 연방법원은 시니어 판사 제도를 도입했다. 판사로 15년 이상 근무한 후 65세가 되면 시니어 판사가 될 수 있다. 시니어 판사는 파트타임이며 법관의 정원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시니어 판사가 비운 자리에 새 판사를 임명할 수 있다. 시니어 판사는 연방법원 사건의 15%를 처리해 미국민에게 신속한 재판을 하는 데 기여한다.

우리도 퇴임하는 대법관 중 희망자를 시니어 판사로 임명해 대법원 사건 처리를 뒤에서 돕게 하자. 주지하다시피 우리 대법원의 업무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12년 대법원은 3만6233건을 처리했다. 대법관 1인당 2787건, 평일 하루 약 11건을 초인적으로 처리한 것이다. 대법관이 방대한 사건 기록 전부를 검토하기 힘들어 100명에 달하는 재판연구관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사건의 폭주를 해결하기 위해 대법원은 심리불속행 제도를 만들었다.

논점이 간단한 사건은 예선에서 걸러지고 판결문엔 ‘이 사건은 심리를 속행할 필요가 없다’고 간단히 기재해 상고를 기각한다. 대법원 상고 사건의 약 70%가 심리불속행으로 기각되니 당사자들은 판결 이유도 알 수 없고 최고법원의 심리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불만이 하늘을 찌른다. 다행히 심리불속행 관문을 통과한 사건도 숫자가 엄청나 심리에 몇 년이 걸리므로 대법원 판결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당사자들의 불만 또한 대단하다. 시니어 판사를 대법원 사건 처리에 투입하면 사건의 신속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직도 전관예우가 존재하며 대법원이 전관예우의 정점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대법관이 퇴임 후 변호사 사무실을 열고 수천만원의 수임료를 받는 것을 국민은 이해하지 못한다. 평생 법관으로 존경받았으면 충분하지 왜 거액의 부까지 챙기려 하는가. 그래서 뜻있는 법조인들이 대법원장이나 대법관을 지낸 분들은 영리 업무에 종사하지 말고 로스쿨 교수나 법원조정센터 조정위원 같은 공익적 업무에 종사할 것을 촉구해 왔다. 편의점에서 6개월 일한 김능환 전 대법관도 이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본다.

전직 대법관은 폭넓은 시야와 고도의 법률 지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 소중한 식견을 사장하는 것은 아까운 일이다. 특히 50대 중후반에 임기를 마치는 분들은 아직 젊으며 언제까지 2선에 머물러 있으라고 강요하는 것도 인적자원 낭비다. 시니어 판사 제도를 도입하면 많은 퇴임 대법관이 시니어 판사를 지망할 것이고 고질적 전관예우도 사라질 것이다. 일단 대법원이 채택한 뒤 결과를 보아가며 법원장과 고법 부장판사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은 공평하고 신속한 재판을 원한다. 대법관 경험이 있는 시니어 판사를 채용하면 대법관을 증원한 것과 같은 효과가 생긴다. 변호사 단체는 대법관을 50명으로 증원하자는 주장을 꾸준히 해왔다. 대법관 증원은 꼭 필요하나 실현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으므로 우선 시니어 판사를 활용해 사건 적체를 줄였으면 한다. 공자는 ‘논어’ 이인편에서 “한 가지만 옳다고 고집할 것도 없고 모두 싸잡아 부정할 것도 없다. 오로지 옳고 바른 것만을 좇는다”고 했다. 대법관을 증원하든 시니어 판사를 도입하든 국민에게 이로우면 좋은 것 아닐까.

시니어 판사 제도를 도입하려면 약간의 법원 예산만 늘리면 된다. 우리 예산 당국은 사법복지에 대해 너무 인색하다. 예컨대 선진국은 재판부마다 법정이 따로 있는 반면 우리는 법정이 부족해 재판부가 재판 날짜를 자주 잡기가 힘들다. 올해 법무부 예산이 2조7000억원인데 비해 법원 예산은 1조5000억원밖에 되지 않는다. 전관예우와 대법원 사건 적체와 같은 법조계의 난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시니어 판사 제도가 꼭 시행됐으면 한다.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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