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항 칼럼] 주민이 행복해야 방문객도 행복하다 기사의 사진

“정상 향하는 로프웨이는 탐방객 머무르게 할 수 없어 …수평 이동 수단이 대안”

지난 초여름 프랑스의 고도(古都) 보르도를 방문했다. 고딕 양식의 한 정점을 보여주는 성 앙드레 성당, 개성과 질서가 조화를 이뤄 저절로 걷고 싶게 만드는 상가 등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와인 생산으로 유명한 이 도시는 무역 중심지 지위를 잃고 나서 한동안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다. 그랬던 보르도가 이제는 ‘프랑스 관광의 미래’라는 명성과 함께 전 세계 여행객을 사로잡고 있다.

미국 언론인 엘리자베스 베커는 올해 펴낸 책 ‘초과예약: 폭증하는 관광산업’(역서명 ‘여행을 팝니다’)을 통해 보르도시의 부활 사례를 조명했다. 베커에 따르면 지난 10여년 펼쳐진 보르도 부흥계획의 주역은 보수주의 정치인 알랭 쥐페 시장이다. 총리를 역임한 그는 보르도시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지킬지를 지역 주민과 관리들이 결정하도록 했다. 2002년부터 역사적 건물의 앞면에 찌들어 붙었던 때를 벗겨내자 마을은 18세기의 숨막히는 아름다움을 되찾았다. 버려진 상업용 창고와 잠수함 기지를 전시장이나 공연장으로 바꾸고 강변공원과 산책로를 조성했다.

쥐페의 업적은 승용차 통행제한 구역을 늘리고 현대적 노면전차를 도입한 데서 정점을 찍었다. 자동차가 없는 보행로, 공공광장과 녹지에는 활기찬 관광객이 넘쳐난다. 하루 500달러 이상을 받는 와인농장 체험 같은 고부가가치 상품이 날개 돋친 듯 팔린다. 보르도시는 인구가 25만명에서 10여년 만에 50만명으로 배증했고 프랑스 10대 도시의 하나로 우뚝 섰다.

스테판 들로 보르도 부시장의 배경설명이 인상적이다. 쥐페 시장의 계획은 도시를 소생시키는 게 목적이었지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게 아니었고, (역설적으로) 그랬기 때문에 관광지로서도 성공했다는 것이다. 좋은 관광의 열쇠는 주민을 위한 계획에 있다. 주민이 행복하면 방문객도 행복해진다. 논어에 나오는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들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 편의시설, 직선화된 넓은 도로, 골프장과 위락단지 등을 조성하는 데 치중한다. 그 같은 시설의 대부분은 지역주민들의 삶과 동떨어져 있거나 그들이 그다지 많이 이용하지 않는 것들이다. 관광객과 지역주민을 격리시키는 시설은 일시적으로 탐방객을 끌어모으는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관광객의 체류시간을 단축시키는 경향이 있다. 탐방객 대부분을 승용차로 스쳐 지나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도로 사정이 좋아지면서 남원과 구례, 수안보 같은 소도시는 서울에서 더 먼 대도시에 관광객을 빼앗긴 채 공동화되고 있다.

설악산 오색지구에서 대청봉 근처의 관모능선을 잇는 로프웨이 건설 방안도 같은 맥락이다. 탐방객들은 케이블카로 13분 만에 설악산 정상 부근에 오른 뒤 내려오면 바로 다른 대처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서울시립대 한봉호 교수는 “로프웨이는 설악산, 즉 산을 더 잘 구경하기 위한 것이지만 산을 가장 잘 보는 방법은 국립공원 바깥에서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산 안에서는 산은커녕 숲도 전체적으로 보기 어렵다. 우리나라 큰 산들의 정상에서 연중 대부분의 날에는 구름밖에 안 보인다.

따라서 로프웨이를 설치하려면 수평 이동이 대안이다. 이미 둘레길이 완비된 지리산은 적합한 사례가 될 수 있다. 둘레길 탐방객의 불만 중 하나가 승용차로 둘레길 초입까지 갔을 때 주차장으로 가려면 걸었던 길을 되짚어 오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둘레길 양 옆으로, 또는 둘레길보다 조금 더 평지 쪽을 따라서 로프웨이를 설치하면 탐방객은 걸어갈 때에는 나무와 꽃을 보고, 돌아올 때에는 곤돌라에서 숲과 산의 경승을 감상할 수 있다. 지역주민들도 마을 간, 도시 간 교통 수요를 해결할 수 있어서 일석이조다. 지역주민에게는 할인요금을 적용하고, 탐방객에게는 민박을 할 경우 숙박료를 할인해 주면 주민 복지와 소득 향상에 두루 도움이 될 것이다. 설악산, 지리산 같은 명산을 오롯이 보전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임항 논설위원 h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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