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김훈] 무기계약 일자리 잘 키워야 기사의 사진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은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정부의 주요 정책 수단이다. 박근혜정부도 민간부문의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해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앞장서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불법 파견을 강력하게 규제하고 나서자 올봄 이마트가 마지못해 9000여명의 도급사원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 것은 아직 기억에 새롭다.

이 무기계약직 전환을 두고 비난이 거세다. 수요 측인 경영의 관점에서 보느냐 공급 측인 노동의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비난의 논점도 판이하다. 기업이 비정규직을 늘려온 주된 이유는 인건비 절감과 경기변동에 따른 고용량 조절에 있는데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경쟁 압력에 시달리는 기업의 채산성이 더욱 악화될 것이며 고용기회의 창출 또한 억제될 것이라는 것이 전자의 주장이다. 한편 후자의 입장에서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어 고용이 보장된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전환된 노동자들은 정규직과는 다른 직종이나 직군으로 분리되어 임금이나 승진기회 등에서 정규직과는 다른 ‘차별’적인 처우를 받게 된다는 것이 문제로 제기된다. 그래서 무기계약직은 무늬만 정규직이지 사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중간에 위치하는 ‘중규직’이라 불린다.

이렇게 상충되는 문제 제기에 해법을 찾기가 쉽지는 않지만 하나의 해법은 고용포트폴리오적인 관점에서의 접근이다. 어떤 회사든 회사 경영에 책임을 지고 장차 회사의 미래를 짊어져야 할 핵심인력은 있기 마련이다. 이들은 장기간에 걸친 기업특수적인 인적자원투자가 요구되는 전형적인 정규인력이다. 이들에게는 근속연수에 따른 연공임금과 임원으로까지 승진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된다. 대신 이러한 정규인력에게는 이른바 ‘무한정적인 노동’이 요구된다. 이들은 회사의 사정에 따라 언제라도, 어디에서든, 무슨 일이라도 수행해야 한다.

즉 본인의 사생활을 희생하면서까지 장시간노동이나 직종 변경을 수반한 배치 전환, 나아가 거주지 이전을 수반한 전근·전출조차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회사에 이러한 핵심인력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특정한 직종 내지 직군별로 회사 운영에 요구되는 직무를 수행해야 할 인력 또한 필요하다.

하지만 이들 인력에 대해서까지 핵심인력과 마찬가지로 회사가 장기간에 걸쳐 기업특수적인 인적자원투자를 하고 연공임금과 임원으로까지 승진할 기회를 부여해야 할 의무는 없다. 노동자의 입장에서도 특정한 회사에 몸담고 있다고 해서 누구나 다 무한정적인 노동이 요구되는 일자리를 수용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동종 내지 유사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 간에 업무나 책임의 정도에 따른 차이가 아닌 불합리한 차별이 존재한다면 이는 시정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업무나 책임에 따른 적정한 임금이 보장된다면 직군이나 직종을 한정해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것 자체를 비난만 해서는 곤란하다. 문제는 무기계약 일자리를 노동자들이 선호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로 어떻게 잘 키워내느냐 하는 데 있다. 핵심인력에게 요구되는 무한정적인 노동이 아니라 ‘일과 생활의 조화’가 가능한, 특히 노동시간에 대한 구속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일자리로 키워내는 것도 한 방법이다.

현재 무기계약직의 주된 공급원은 여성층이지만 일자리의 구속성이 높으면 가사·육아·개호 등의 부담으로 인해 일을 계속하고 싶어도 계속하기가 어려우며, 일단 일을 그만두게 되면 경력이 단절되어 비정규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규직이지만 일자리의 구속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일자리가 확충되어 생애단계상의 필요에 따라 전일제에서 시간제, 시간제에서 전일제로 일자리를 오갈 수 있는 가능성이 확대된다면 여성층뿐만 아니라 청년층이나 고령층의 노동공급 또한 크게 늘어날 것이다.

김훈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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