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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발견] (38) 무중력 글쓰기

[디자인의 발견] (38) 무중력 글쓰기 기사의 사진

육중한 성벽처럼 솟은 도심의 고층 건물들이 가벼워졌다. 디스플레이 패널을 갑옷처럼 두른 덕분에 스크린이 된 건물 벽면이 콘크리트의 견고함을 가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의 손길은 미디어 아티스트와 프로그래머의 작업에 가려지고 있다. 예컨대 서울역 앞의 사연 많은 건물도 벽면에 타고 흐르는 이미지 뒤로 물러나곤 한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 벽면에 낯선 텍스트가 뿌려지고 있다.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리는 ‘타이포잔치 2013’의 한 프로그램으로 서울 스퀘어에서 ‘무중력 글쓰기’가 시작된 것이다. 시가 시집에서 벗어나 10분 동안이나마 꿈틀거리는 거대한 육신을 입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시인과 디자이너의 협업으로 펼쳐진 공중의 텍스트를 보는 순간, 텍스트란 정보 교환의 매개만이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

경제적이지 생산적이지 않을 것 같은 이런 퍼포먼스가 실현 가능했던 것은 어떤 이들의 설득과 배려 덕분이다. 그래서 유동인구가 많은 도심을 장악한 거대한 스크린들이 어떤 경험을 줄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말하자면 뭘 사라고 악악거리거나 예술 작품으로 스펙터클을 만들지만 말고 ‘시’를 만나게 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김상규(서울과학기술대 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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