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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만 칼럼] 열린사회로 이끌기

[임순만 칼럼] 열린사회로 이끌기 기사의 사진

“올드보이의 경직성과 관료들의 지식만으로는 열린사회의 꿈을 이루기 어렵다”

우리의 힘을 발견하는 때가 있다. 요즘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부산 해운대 바닷가나 센텀시티에 가면 우리의 문화향수(享受)력이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중장년층이나 노년층도 영화 티켓을 구입하느라 매표소마다 한 시간 이상씩 줄을 서고, 이벤트나 부대행사를 즐기느라 일대가 축제분위기다. 인파는 ‘태평양 방파제’까지 이어진다.

이렇게 활기찬 영화제는 어디에도 없다. 한때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도쿄국제영화제는 실상 대부분의 도쿄인들이 무슨 행사인지조차 모르는 영화제다. 상영관은 한산하고 문제작들은 별반 출품되지 않는다.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칸영화제도 세계 톱클래스의 영화인들이 찾아온다는 메리트는 있지만 부산영화제처럼 활기찬 축제로까지 이끌어가지는 못하고 있다.

문화를 즐긴다는 것은 무엇인가. 노는 것이다. 긴장을 풀어헤치고, 진영을 나누지 않고, 공동체의 울타리를 넘나들며 노는 것이다. 중심에서 노는 사람들이나 주변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이나 다 같이 놀고 얻어가는 것이다. 왜 문화를 즐기는가. 지배하거나 억압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와 같이 권력과 서열로 지배하는 것을 즐거워할 사람은 없다. 돈과 물질로 차등하는 것을 지지할 사람도 없다. 문화는 억압하지 않음과 자유로움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그 놂 속에서 무언가 생겨나게 한다.

문화는 어떻게 융성하는가. 문화는 다양성과 자유로움이 본질이다. 하나의 이데올로기만이 강조될 때 그 대립항은 시들고, 대립항이 시듦으로써 그 이데올로기 자체마저 시든다. 다양성과 자유로움이 보장될 때라야 창조력이 발휘되고 문화는 융성한다.

부산영화제가 없었다면 김기덕 감독도 없었다. 이것은 부산영화제가 자랑할 만한 명제다. 부산영화제가 창설될 당시 데뷔한 김기덕에게는 그의 영화를 걸어줄 극장이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영화계는 김기덕에게 벽이었다. 그러나 부산영화제는 그를 받아줬다. 부산영화제를 통해 그는 극심한 찬반 논쟁 속에 서게 됐고, 한국영화 수상으로는 역대 최고인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2012)을 받았다. 부산영화제가 검열의 가위를 든 당국의 압력에 굴했더라면, 김기덕같이 골치 아픈 감독을 배제했더라면 세계의 유명 감독들이 장편영화를 최초로 선보이는 ‘월드 프리미어’ 부문에 올해 68편을 출품하는 성과를 기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다양성과 창의력은 1980년대 후반부터 우리 사회에 나타난 도저한 흐름이다. ‘한류(韓流·Korean wave)’라는 이름을 얻은 이 자생적인 힘은 오랜 독재정치에서 민주주의를 쟁취한 시민들의 폭발적인 에너지가 그 원천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한류의 소멸을 걱정하는 일부 시각도 있지만 한류를 무력화시킬 만큼 강력한 자생력이 솟구치는 나라는 아직 없다는 점에서 한류의 효력은 상당 기간 지속된다고 단언해도 좋을 것이다.

문제는 이 힘을 조절하고 이끌어줄 정치력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월 취임식에서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을 국정 3대 과제로 제시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우리 사회를 자유로운 구조로 향하게 하는지, 아니면 엄격한 구조로 지향하게 하는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사회의 기강 확립은 필요하다. 경험과 지식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올드 보이와 관료들의 합창만으로는 곤란하다.

대만 출신 차이밍량 감독의 신작 ‘떠돌이 개(Stray Dogs)’는 도시를 떠도는 아빠와 아이들의 삶을 보여준다. 열 살쯤 돼 보이는 딸아이가 어느 날 마트에서 양배추 한 통을 산다. 오빠가 물어도 용도를 알려주지 않는 여자아이. 밤에 카메라가 비밀을 비쳐준다. 여자애는 노숙이나 다름없는 낡은 건물의 허드렛 공간에서 양배추를 비닐봉지에 넣어 가슴에 품고 잔다. 외롭고 추웠을 것이다. 이런 감수성이 살아 있어야 한다. 경직된 엄정함과 기계적인 지식만으로 열린사회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인가.

편집인 s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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