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귀은] 글이 당신을 완성한다 기사의 사진

가을엔 고졸한 스웨터를 걸치고 약간 구겨진 면바지를 입은 남자가 멋있어 보이는 법이다. 이런 남자는 절제의 미를 구사할 줄 알 것 같고, 점잖으면서도 명랑할 것 같다. 아마 그가 쓰는 휴대전화 문자도 그럴 것이라 예상된다. 하지만 만약 그런 외양을 가진 남자가 문자에 ‘헐’, ‘대박’을 마침표처럼 쓰고, ‘ㅋㅋㅋㅋ’, ‘ㅎㅎㅎㅎ’를 남발하고, 부주의한 오타로 자음과 모음이 깨진 상태로 문자를 보낸다면, 그 고졸한 스웨터는 촌스러운 스웨터로 보일 뿐이고, 구겨져서 편안하게 느껴지던 면바지는 그냥 후줄근한 바지로 보일 것이다.

여자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지적인 옷을 입고 있고 몸에서 우아하고 나른한 향이 나더라도, 그녀가 쓰는 글에 영어와 한글이 마구 섞여 있고 나아가 그것으로 자기과시를 하려 한다면 그 옷도 허영일 뿐이고 그 향도 조작적인 것으로밖에는 안 비칠 것이다.

“문체란 사람이다”라는 명제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요즘처럼 일상에서 문자다 트위터다 하며 ‘글자’를 많이 쓰는 시대에는 그 사람이 쓰는 짧은 글이 그 사람의 존재양식을 완성하는 마지막 요소일 수 있다. 구두가 패션의 완성이라면, 글은 존재의 완성인 셈이다.

무엇보다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다양하고 다채로울진대 자신의 생각이 좀 더 섬세하게 표현되려는 찰나 ‘대박, 헐, ㅎㅎㅎㅎ, ㅋㅋㅋㅋ’ 등으로 종결지어 버리는 것은 자신의 표현을 스스로 뭉개버리는 꼴이 된다. 이것은 단지 고상하지 못한 언어생활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존재의 문제다.

깨진 한글은 더 심각하다. 맞춤법이 틀리거나 유행어를 무심코 쓰는 것보다 더 중대한 문제일 수 있다. 오타가 아무렇지도 않게 허용된다는 것, 자신이 쓴 ‘글’을 재확인하지 않고 그냥 전송해 버린다는 것, 그래서 이 전파의 공간에 오타와 뜻 모를 문장들이 둥둥 떠다닌다는 사실은 섬뜩하기조차 하다.

음성전화가 주된 소통 매체였던 시대에는 이토록 ‘글’을 자주 쓰지는 않았다. 휴대전화가 진보하면서, 스마트폰이 더 많이 보급되면서 ‘글’을 보내기가 더 수월해졌다. 결국 그 수월함이 남에게 ‘글’을 보내는 것에 대해 더 무신경하게 만들었다. 물론 휴대전화의 문자를 몇 번씩 퇴고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결국 감정이라곤 전혀 섞이지 않은 가장 평범한 문자를 보내어 상대를 어려워하고 있다는 감정을 단번에 들키기도 한다. 썼다 지웠다 하다가, 결국 보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쓰지 않는 것이 더 마음을 잘 전달할 것으로 판단된 순간 그럴 것이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보낼 글에 대해 좀 더 숙고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140자 글을 누구나에게 전송할 수 있는 시대다. 140자를 퇴고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더 적확하게 한 자 한 자 박아 넣는 성실함을 보이는 것이 상대를 진정 배려하는 일일 것이다. 쉴 새 없이 지저귀는 새보다 한 번씩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새가 더 아름다운 법이다.(‘트위터’는 원래 ‘새가 지저귀다’라는 뜻이다.)

하기야 한글날을 다시 공휴일로 지정하자고 한 것도 2012년 이외수씨 트위터에서였고, 이를 보고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그에 동감한다는 내용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었고, 올해 한글날이 휴일인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정보를 퍼다 나른 것도 트위터하는 사람들이었으니, 모순이 없기 위해서라도, 이 트위터는 더욱 한글날 취지에 맞는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임에 틀림없다. 이 멋진 글자를 가지고 자신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느껍다. ‘한글날’은 한글을 정확하게 쓰자는 취지를 살리는 날일뿐만 아니라, 자기 생각을 가장 적확하고 아름답게 쓰기 위해 노력하자는, 자신이 쓰는 한글에 대한 자의식을 일깨우는 날이 되어야 한다.

한귀은 (경상대 교수·국어교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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