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항 칼럼] 환경정의를 위한 에너지전환 기사의 사진

“‘끌 수 없는 불’ 원자력발전 줄이려면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으로 수요 억제해야”

원자력 발전에 대한 찬반 입장은 우리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여러 가지 기준 가운데 하나로 여겨졌다. 최근 들어 이런 구도에 균열이 생기는 것 같다. 후쿠시마 원전 누출사고 이후 수산물에 대한 공포와 밀양 송전선 갈등이 원전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을 조금씩 바꾸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일본의 시민과학자 다카기 진자부로가 원자력은 ‘끌 수 없는 불’이라고 묘사한 것을 이제 많은 사람들이 체감하고 있다. 원자력에서 많은 전기를 얻고 있지만, 거기서 나오는 방사성 물질이나 폐기물의 방사능은 꺼버릴 수 없다. 이제 원전 찬반 입장은 과학낙관론을 믿을 것인가, 또는 어떤 사실관계나 어떤 이익을 더 중시하느냐는 구체적 선택의 문제로 좁혀졌다.

원전은 지역 간, 세대 간 차별을 전제로 한 에너지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원전의 잠재적 위험성과 사회적 비용을 주변지역 주민과 다음 세대가 더 크게 부담하게 된다. 우리나라 원전은 동해안 지방에, 고압 송전선로는 강원과 충남지방에 밀집해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선진국 대부분은 기존 원전을 폐기하거나 증설을 포기하고 있다. 원전 증설 계획을 유지하는 곳은 중국, 러시아, 인도 등 독재국가나 권위주의적 국가들이다.

물론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낮고 개발 여건이 좋은 편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바람직한 에너지 전환에 이르기까지 원전의 교량적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 상당 기간 기존 원전과 건설 중인 원전 없이는 수요 전력량을 제때에 다 공급할 수 없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원전은 수출산업으로서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 없다.

앞으로 20여년간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제시한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2013∼35년) 초안이 지난 13일 발표됐다. 민·관 합동 워킹그룹은 오는 2035년 전체 전력설비 중에서 원전 비중을 22∼29%로 설정하는 정책 권고안을 내놨다. 현재의 원전 비중(26.4%) 수준이다. 1차 에너지기본계획(2008년) 때의 2030년 원전 비중 41%에 비하면 크게 낮춰 잡았다. 원전 확대일변도 정책에 첫 제동을 걸었다는 데 의미를 둘 수도 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원전파(산업통상자원부)와 반핵파(전문가와 환경단체)의 절충에 불과하다. 내용상 오히려 원전 확대의 여지를 크게 남겨뒀다. 가장 중요한 전력수요 예상치가 여전히 과장돼 있다. 산자부는 2020년 전력수요를 2009년 이명박정부의 전망치(4360만TOE)보다 20.4%나 증가시킨 5250만TOE(석유환산톤)로 잡았다. 민주당 장하나 의원에 따르면 환경부는 2020년 전력수요를 2009년 전망치 대비 7.6%만 늘어나는 4690만TOE로 제시했으나 결국 산자부의 전망을 그대로 수용했다고 한다. 이처럼 부풀려진 수요를 맞추기 위해서는 단기적으로는 화력발전소를, 결국은 원전을 더 지을 수밖에 없다.

문제의 핵심은 비싼 에너지인 전력의 수요억제책이다. 전력 소비를 대폭 줄이면 원전도, 화력발전소도 더 짓지 않아도 된다. 국제수지와 국민의 건강이 개선되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과 온실가스 배출도 줄인다. 그러나 장 의원에 따르면 산자부는 스스로 줄여야 한다고 했던 난방용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것을 전제로 전력수요 전망을 짰다. 전력 수요관리를 위해 가장 중요한 수단은 두말할 것 없이 전력요금 인상이다. 특히 너무 싼 산업용 전기요금을 둘러싼 도덕적 해이가 여전히 심각하다. 같은 100달러 부가가치를 생산하는데 우리나라는 독일, 프랑스, 일본보다 배 이상의 전기를 쓰고 있다.

전력요금 인상과 수요억제 의지가 미약한 산자부에 지난 전력 수급관리 실패의 책임을 묻고, 수요관리 정책에서 손을 떼게 해야 한다. 에너지기본 계획 초안은 큰 줄기가 앞으로 변할 수도 있다. 장차 원전 비중은 전기 소비 감축외에도 국가 발전전략, 산업구조의 조정 방향과 속도, 국민의 안전, 오염자 부담원칙과 환경정의 등의 우선순위를 잘 고려해 충분한 공개 토론과 사회적 합의를 거쳐 결정해야 할 것이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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