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김현] 국군포로 송환 서두르자 기사의 사진

1775년 보스턴 콩코드 광장에서 막강한 영국군과 대치하고 있는 미국 독립민병대, 일촉즉발 언제든 전쟁이 시작될 상황이다. 누구나 죽음은 두려운 법. 민병대 젊은이들은 얼마다 두려웠을까. 민심이 모두 독립파를 지지한 것도 아니었고 영국에 충성하는 왕당파가 여전히 많았으므로 죽음을 무릅쓰고 독립파에 가담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인간답게 자유를 누리며 살고픈 욕구가 그들을 격려했고 낡은 권력의 부당한 핍박은 그들을 분노케 했다. 결국 시대정신을 깨달은 그들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고 세계 최초의 민주국가를 탄생시켰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권을 증진하고 부당한 압제에 저항하며 약자를 도와 민중의 삶을 풍요하게 하는 것이 역사의 큰 흐름이었다. 견딜 수 없는 폭정을 휘두르고 장거리 미사일로 선량한 이웃을 위협하며 원자로를 재가동해 세계평화를 해치는 북한 정권을 붕괴시켜 북한 주민들을 구출하는 것은 시대의 소명이다.

필자는 ㈔물망초 국군포로송환위원장으로서 정부에 제안한다. 서독이 동독의 정치범 3만명을 1인당 5000만원을 주고 데려온 것처럼 우리도 북한에 생존해 있는 350명의 국군포로를 한국에 돌려보낼 것을 북한에 당당하게 요구하자. 생존 국군포로들이 판문점을 거쳐 보무도 당당하게 귀국하는 날은 국군포로의 날로 선포되고 대한민국은 뜨거운 환희로 뒤덮일 것이다. 전 국민이 그들이 돌아오는 길에 서서 따뜻한 박수를 보내며 광화문광장에 그들의 이름이 새겨질 것이다. 그동안 당신들을 보호해 주지 못한 조국은 부끄러워하며 당신들을 맞을 것이고, 젊은이들은 조국에 위기가 닥치면 온몸으로 막겠다고 다짐할 것이다.

세계 굴지 정보기관 모사드의 철칙은 억류된 동지를 송환시키기 위해 어떤 희생도 치른다는 것이다. 진정한 애국자인 국군포로를 전원 데려오는 것은 국가의 신성한 의무다. 미국은 6·25전쟁 미군 포로 송환을 완료했고 전사자 유해 송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포로 이동경로를 꼼꼼히 조사해 어느 지역에 몇 구가 묻혀 있는지 파악했으며 유해 1구당 2000달러를 지급한다고 한다. 국군포로는 거의 남한 출신인데 그들이 버젓이 살아 있으며 애타게 고향을 그리는 것을 알면서도 손을 놓고 있어서야 어떻게 한 민족이라 할 수 있나.

2호 탈북 국군포로 양순용 일병은 1953년 중공군에 잡힌 이래 45년간 귀향할 날을 그리며 잊지 않으려고 하루에도 몇 번씩 대한민국의 주소를 되뇌었다. 1998년 천신만고 끝에 귀국해 국군포로의 실상을 증언하다가 2001년 눈을 감았다. 생환 국군포로들은 50여년을 하루 12시간 이상 탄광에서 혹사당하면서도 강인한 정신력으로 희망을 잃지 않고 죽음을 무릅쓰고 사지를 탈출한 영웅들이다. 국군포로의 자식들은 적대계층으로 분류돼 대학도 못 가고 당에도 입당하지 못하는 절망적인 삶을 살아야 하므로 국군포로들은 자식의 원망을 듣는 인간적인 아픔도 겪었다.

생환 국군포로 81명 가운데 생존해 있는 51명에게 자랑스러운 훈장을 드리자. 그들의 희생 위에 대한민국이 경제기적을 이루고 자유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었다. 그동안 우리는 먹고살기 바빠 그들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의 강제노역 기간을 군복무의 연장으로 보아 국가가 민사 손실보상을 할 필요가 있다.

2011년 이후엔 귀환 국군포로가 없다. 북한이 국경 경계를 강화했고 국군포로의 연령이 80세가 넘어 자력으로 국경을 넘기 힘들기 때문이다. 중국 국경지역 단둥이나 투먼에 우리 영사관이나 연락사무소를 설치해 국군포로가 국경을 넘었을 때 우리가 신속히 도울 수 있도록 하자. 국군포로를 위해 쓰는 돈이야말로 아깝지 않은 통일비용이고, 장래 통일됐을 때 우리는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애썼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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