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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근대소설 속 진화 거듭하는 우리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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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탄생/최정운/미지북스

흔히 정치를 하려면 소설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소설 속엔 정치가가 현실 속에서 만나야할 다양한 인물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인의 초상을 우리 근대소설에서 추출하는 일은 당위성을 갖는다.

우리 역사에서 최초로 근대적 소설이 나타난 것은 일본보다 약 20년 후였다. 이인직의 신소설 ‘혈의 누’가 1906년 ‘만세보’에 연재되면서부터다. 근대소설이 이렇게 늦게 도입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구한말이 되어서야 이전의 문학 형식으로는 감당하지 못한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대두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근대 서구의 문학 형식에 담아야 할 새로운 종류의 이야기들, 구한말 특유의 이야깃거리들이 나타났을 때에야 비로소 최초의 근대소설이 쓰였다는 것이다.

시대는 이른바 홉스적 자연상태였다. “한일병합 직전쯤의 시기에 오면 새로운 종류의 한국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홉스적 자연상태에서 생존을 위해 싸우다 보니 영악하고 강인한 생존의 대가들이 나타났다. 나아가서 홉스적 자연상태의 외로움과 괴로움 속에서 참혹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그들의 정체성, ‘조선인’임을 부정하는 사람들의 집단이 대규모로 출현했다. 그러자 이들 정체성을 부정한 집단에 자극받은 사람들은 그들을 ‘반역자’로 인식하며 그러한 부정을 다시 부정했고 이른바 우리의 근대 민족주의를 창시하였다.”(523쪽)

홉스적 자연상태의 상처는 후유증으로 남아 앞으로 전개될 한국인의 모습에 깊은 흉터를 남긴다. 이후 3·1운동 직전에 나타난 초기 민족주의자의 모습은 춘원 이광수와 단재 신채호에 의해 그려진다. 하지만 춘원이 ‘무정’에서 제시한 이형식이라는 인물은 그 출발에서부터 이미 서구에서 수입한 근대인이었다. 그는 서구에서 도입한 내면과 그 안에 욕망과 이성을 장착한 일본유학을 거친 영어선생이었다. 하지만 이형식 같은 신지식인의 정통성은 서구의 지식을 소개하고 가르치는 데서 비롯되기에 이러한 지식 중개상의 지위는 실로 위태로울 수밖에 없었다.

1930년대가 되면서 대도시 서울이 대두한다. 대도시 서울은 우리 민족이 처음 경험하는 생태 공간이었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주인공은 무직자이다. 가족과 친구들은 그의 생활을 걱정하고 구보씨는 정신적인 수고를 덜 겸 또 오락삼아 흔하디흔한 월급쟁이로 위장하고 대도시를 거닌다. 이러한 구보씨가 대표하는 지식인의 생활양식은 전대미문의 것으로, 그는 이전에 없던 전혀 새로운 ‘종자’였다. 구보씨는 본질적으로 시대에 ‘두통’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아직 일을, 사명을 찾지 못한 사람. 현실과 이상의 간극 속에서 길을 잃은 구보씨 이후의 인물은 이상의 ‘날개’에 나타난 예술가의 자화상이었다. 이상은 ‘날개’를 통해 대도시 지식인의 껍질을 깨고 새로 진화하는 순간을 펼쳐보였다. 그러나 이형식이든, 구보씨든, ‘날개’ 속 자화상이든 한국인의 초상을 찾는 선택의 핵심은 해방 이후 한국인의 첫 번째 특징으로 조우하게 될 문제였다. “해방된 한국인들은 너무 거칠었고 ‘힘’에 대한 박탈감에서 ‘힘’의 추구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1930년대 춘원을 위시한 조선 지식인들이 이룩한 ‘강한 조선인’ 추구의 대가였을 것이다.”(540쪽)

근대 한국인의 초상은 어쩌면 출발 자체부터 위악 그 자체였고 한국인의 정체성은 이러한 위악으로 굴절되어 있다는 게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인 저자의 결론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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