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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만 칼럼] 한국은 어떤 문명을 만들고 있나

[임순만 칼럼] 한국은 어떤 문명을 만들고 있나 기사의 사진

“우리가 선진국에서 주목할만한 지성을 갖추고 노벨문학상을 염원하는 것인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로버트 카파(1913∼1954) 100주년 사진전을 보면 하나의 의문을 갖게 된다. 전쟁의 비극을 공간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포착했다는 평가를 받는 한 컷의 사진, 1936년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코 파시스트 군대에 맞서 투쟁한 공화파 병사가 총알을 맞고 쓰러지는 순간을 잡은 ‘어느 병사의 죽음’은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하는 듯하다. 스페인 내전 못지않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경험한 한국은 전쟁의 아픔을 어떻게 작품화하고 있는가.

전쟁은 인간성의 극한이 적나라하게 나타나는 현장이기에 하나의 전쟁이 발발하면 한 세대 기간인 30년 안에 세계적인 명작이 탄생한다고 한다. 전쟁은 과거에는 표출해낼 수 없었던 새로운 경험과 생각의 형상화가 가능해지게 하는 것이다. 스페인 내전은 로버트 카파의 사진 외에도 파블로 피카소의 벽화 ‘게르니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장편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20세기 최고의 다큐멘터리로 꼽히는 엔터니 비버의 ‘스페인 내전’ 같은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2차대전이 끝나고 쏟아져 나온 일본의 전후(戰後)문학은 세계가 주목했던 현상이었으며, 중국에서도 문화대혁명 이후 모옌의 ‘붉은 수수밭’을 위시한 몇 편의 세계적인 소설이 나왔다. 베트남 전쟁의 비극을 다룬 바오닌의 ‘전쟁의 슬픔’도 세계인들이 주목한 소설이다.

그러나 한국은 전쟁 60년이 지났음에도 세계가 주목하는 작품을 내지 못했다. 왜 그런가. 이 의문은 다음 질문으로 이어진다. 한국은 경제력 규모가 세계 10위권으로 성장했으면서도 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가.

물론 한국에도 한국전을 다룬 많은 작품이 있다. 1970년대까지 한국의 작가들에게 한국전은 일종의 가위눌림이었고, 그래서 많은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그 작품들 중 오늘날까지 읽히고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다시 말해 지구촌 사람들이 공감하는 결정적인 작품은 없다. 왜 그런가.

남과 북은 국토만이 아니라 의식의 공간까지도 철저하게 분단돼 통합적인 서사화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작가들에게 그럴 자유마저도 주어지지 않았다. 한쪽 얘기만을 들을 때 사람들은 공감하기 어렵다. 진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양쪽을 함께 다뤄야 한다. 오늘날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남과 북을 넘나드는 사고와 창작의 자유가 보장됐다손 치더라도 지금은 한국전의 강물이 흘러간 지 참 오랜 세월이 됐다.

이는 6·25를 다룬 명작이 부족하다는 사실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 우리 문명의 발아(發芽)와 전개에 깊은 연관을 갖는 것이기에 되짚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지구촌은 당연히 전쟁 이후 한국이 어떤 문명을 싹틔워내고 있는지에 관심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한국의 발전이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의 지표를 기록하는 것인지만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문화 역량을 갖고 있는지, 그것이 지구촌 문명에 어떻게 섞이며 기여하고 있는지를 평가할 것이다. 물론 노벨문학상은 한 작가의 작품세계에 주는 상이다. 그러나 노벨상위원회는 선진(先進)한 문명을 보여주지 못하는 나라의 작가에게 호감을 갖고 상을 준 사례는 거의 없다. 한 사회에서 작가의 작품세계는 고립적으로 존립하기보다 그 사회의 문화 역량과 깊은 함수관계를 갖기 때문이다.

쉬지 않고 터져 나오는 원전 비리를 보면서 세계인들은 한국이 위험한 원전을 운용할 만한 역량을 가진 나라인지, 계속적으로 나타나는 대학의 비양식적 관행을 보면서 학문과 지성의 순수성을 확보하고 있는지, 국가의 주요 정보를 다루는 기관들이 대통령 선거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정치적으로 미개하지 않은 문화를 축적한 나라인지를 평가하려 할 것이다. 이런 사항들에 있어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되면 노벨문학상처럼 순수 문화예술 영역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편집인 s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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