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걸기-한승주] 친절한 ‘미스터 카젠버그’ 기사의 사진

할리우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은 고정관념을 비켜간다. ‘슈렉’에서 피오나 공주는 마법이 풀렸지만 예뻐지진 않았다. ‘터보’에선 느림보 달팽이가 레이스를 하고, ‘쿵푸팬더’에선 움직이기 싫어하는 판다가 쿵푸를 한다. 이런 발칙한 상상력과 변화의 중심에는 제프리 카젠버그(63)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최고경영자가 있다.

최근 그가 한국을 찾았다. 지난 17일부터 20일까지 3박4일 동안 그는 바빴다. 청와대를 방문해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고, 세종대에서 애니메이션 전공 학생들을 만나 그들의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조언했다. ‘설국열차’의 봉준호 감독과 특별대담도 가졌다. 관광 일정은 없었다. 그는 무언가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일에 매진했다. 자신의 얘기를 하기보다는 듣는 데 주력했다. 테마파크 사업에도 관심 있는 그는 에버랜드와 롯데월드도 둘러봤다. 그는 소탈했다. 수행비서도 없이 혼자 여행가방을 들고 왔다. 홍보 담당자 한 명이 동행했지만 그는 한국에서 합류했다. 빠듯한 일정을 쪼개 한 명이라도 더 만나려 했다. 식사는 종종 도시락으로 때웠다.

도착 당일, 그는 갑자기 한국의 영화담당 기자들을 만나고 싶다고 요청했다. 18일 오전 청와대 방문, 낮 1시30분부터 세종대 일정이 잡혀 있었는데 그 사이를 쪼개 기자들을 만난 것이다. 특별한 이슈는 없었다. 그저 기자들의 생각을 듣고 싶어 했다. 할리우드에서 보기에 작은 나라 한국의 눈부신 영화산업은 부러울 만도 했다.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할리우드 영화가 휩쓸고 있는데 한국은 자국 영화의 점유율이 60%에 이른다. 태평양 건너 카젠버그가 보기엔 주목할 만한 대상임에 틀림없다.

캐주얼한 식당에서 만난 그는 기자들의 손을 일일이 잡으며 어느 매체인지를 확인하고 명함도 전부 챙겼다. 가벼운 티타임으로는 이례적으로 20여명의 기자들에게 “돌아가며 모두 질문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는 1시간가량 서서 질문한 기자와 눈을 맞추며 정성껏 답했다. 그를 초청한 CJ그룹은 카젠버그가 점심식사를 할 시간도 없는 것 때문에 초조해하며 서둘러 행사를 끝내려 했으나 정작 그는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나도 질문이 있다. 피자는 언제 오느냐”고 묻던 그는 결국 식사를 못하고 다음 장소로 떠났다.

세종대에서 애니메이션 전공 대학생을 만난 자리에서도 그의 소통은 빛났다. 카젠버그는 이들의 프레젠테이션을 경청한 후 “드림웍스에 오는 것이 꿈이라면 당신은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꼭 안아주기도 했다. “완전 감동했다.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도 평했다. 그의 말 한 마디는 2000석을 가득 메운 젊은이들에게 격려가 되기에 충분했다.

시차와 바쁜 스케줄에 피곤할 만도 한데 그는 늘 웃었다. 어떤 곳이건 행사장을 떠날 때마다 웃으며 먼저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본인이 솔선해 단체사진을 찍자고 하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웃음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더 웃길 수 있는지 고민한다고 했다.

성공의 공식을 좇지 않고,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해온 카젠버그. 혁신과 상상력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그는 박근혜정부가 지향하는 창조경제의 모델이기도 하다. 그가 방한기간 남긴 메시지도 좋았지만 더욱 인상적인 것은 그의 태도였다.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진심어린 격려, 그건 바로 우리 시대 지도자가 갖춰야 할 ‘소통’의 열린 자세였다.

한승주 대중문화팀장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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