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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인류공통어, 그저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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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언어/울리히 린스/갈무리

그 시대 가장 강력한 나라의 언어를 쓸 줄 안다는 것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이익이다. 마치 오늘날 영어를 잘 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가 열리는 것처럼. 과거 파시즘의 시대에는 독일어, 스탈린 시대에는 러시아어가 그랬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어가,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스페인어가 이른바 패권어로 작동했다.

반면 역사의 이면에는 보편적인 인류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만국공통어를 꿈꾼 이들이 있었다. 무수한 언어가 생겼다 쉽사리 사라졌지만 아직 그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언어가 바로 ‘에스페란토’다.

창안자는 유대인 라자로 자멘호프(1859∼1917). 그가 태어난 비알리스토크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폴란드 지역으로 유대인과 폴란드인, 러시아인, 독일인, 벨라루스인 등이 민족어를 쓰며 서로를 의심하고 살았다. 자멘호프는 언어의 다양성이 인류를 분열시키고 불행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확신했고, 그 불행을 제거하기 위해 새로운 언어를 만든다. 1887년 7월 러시아어로 쓰인 40쪽짜리 ‘제1서’를 출간한 뒤 1891년까지 12개 언어로 33종의 교재가 나오며 급속도로 확산된다. 하지만 이내 각 나라에서 다양한 이유로 난관에 봉착한다.

서유럽에서는 에스페란티스토(에스페란토 사용자)가 너무 진보적이라 ‘위험한 공산주의자들’로 공격받았다. 독일에서는 에스페란티스토의 대다수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의 핍박을 피할 수 없었다. 러시아에서의 부침이 가장 극적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직후엔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상호 이해 수단’으로 환영받았지만, 1928년 소련 내부의 계급투쟁이 격화되고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론’이 제기된 뒤엔 부패한 부르주아 사상의 침투 수단이자 부르주아 정권을 위한 간첩 활동으로 비판받았다.

분량은 짧지만 중국과 조선, 대만,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의 에스페란토 운동을 보여주는 장도 흥미롭다. 다민족 다언어라는 현실이 근대화를 저해할까 우려하던 중국 지식인들은 에스페란토의 전면 도입을 주장했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던 조선에서 에스페란토 운동은 진보적인 동시에 구국의 운동이었다. 1920년 김억은 서울 YMCA에서 첫 번째 에스페란토 대중강습회를 지도했고, 곧 ‘조선 에스페란토협회’가 결성됐다. 제국주의 국가가 지배국의 언어를 보급해 동화 정책을 폈던 시대에 식민지 국가 지식인들이 에스페란토 운동에 열심인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독일 태생의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인 저자는 1958년 처음 에스페란토를 접한 뒤 국제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왕성히 활동해왔다. 그는 전 세계 각지에 흩어져있는 에스페란티스토들로부터 다양한 자료와 실증적 경험을 건네받아 핍박의 역사를 에스페란토로 생생하게 기록했다. 하지만 “에스페란토에 대한 박해가 다른 어떤 선전보다 이 언어의 생명력을 더해줬다”는 그의 말처럼 무수한 핍박에도 에스페란토는 살아남았다. 지금도 유럽과 타 지역을 오가며 국제 에스페란토대회가 개최되고, 한국에서도 해마다 10월이면 한국에스페란토협회 주최로 대회가 열리는 현실이 이를 입증한다.

책은 에스페란토라는 새로운 언어에 ‘위험한 언어’라는 딱지를 붙이고 끊임없이 핍박했던 국가, 특히 소련 스탈린 시대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특정 언어의 핍박사라기보다 그것을 통해 다시 보는 20세기 현대사라고 불러도 될 만한 책이다. 에스페란토를 접하고 꾸준히 이 분야에서 활동해온 최만원씨가 에스페란토 원서를 한국어로 번역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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