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손수호] 가을이 서럽거든 망우리에 가자 기사의 사진

하루가 다르게 햇살이 얇아진다. 바다와 들판을 힘차게 돌던 바람이 도시에 이르러 찬 기운을 훅 뿜는다. 햇살과 바람은 기어이 잎을 흔들어 나무의 겨울을 일깨운다. 떨어진 낙엽은 대지의 품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부활의 생명을 꿈꾼다. 10월과 11월의 징검다리에 내려앉은 조락(凋落)의 풍경은 이토록 아름답고도 서럽다.



이 가을이 서러움을 넘어 고통스럽게 다가오면 망우리공원으로 가라. 산 자가 죽은 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생의 의미를 되짚는 성찰의 공간이 거기에 있다. 때론 슬픔의 심연 앞에서 목 놓아 울 수도, 옷에 묻은 먼지를 털 수도 있다. 망우리 우체국의 소인이 찍힌 초대장에는 가을 묵상의 지도가 그려져 있다.



사랑이 애닯거든 차중락의 무덤으로 가라. 욕망의 덫에 빠져 스물일곱에 요절한 한 엘리트 가수의 빛과 그림자가 있으니. ‘푸르던 잎 단풍으로, 곱게 곱게 물들어, 그 잎새에 사랑의 꿈, 고이 간직하렸더니, 낙엽이 지면, 꿈도 따라 가는 줄, 왜 몰랐던가.’ 그를 죽도록 사랑한 미국 여대생 알린의 연서는 국경을 넘은 하얀 손수건의 순애보다.



격동기 풍운아들의 스산한 자취

길을 잃었다고 여겨지면 박인환의 묘소를 권한다. 굿 닥터의 영화를 버리고 시인의 가난을 택한 그는 주모에게 “꽃이 피면 밀린 술값을 갚겠다”고 약속해놓고는 꽃이 채 피기 전에 목마를 타고 서른한 살 운명을 마감했다.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를 외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지독한 슬픔의 카타르시스를 찾는다.



세상이 원망스러우면 이중섭 묘역의 푸른 소나무를 보라. 위대한 미술가는 살아생전 굶어 죽었다. 시신은 사흘 만에 발견돼 겨우 화장을 해 유해의 반은 일본의 가족에게 보내졌고 나머지 반이 망우리에 묻혔다. 지금 시장은 그의 그림에 환호하고, 전국 곳곳에서 앞다퉈 이중섭을 기리지만 무덤에는 은지화 그려진 조각과 굽은 소나무 한 그루가 전부다. 그게 인심이다.



중심이 흔들리는 사람은 죽산의 검은 비석을 보라. 거기에는 ‘竹山曺奉岩先生之墓’라는 글귀만 있을 뿐 나머지 넓은 공간은 비워졌다. 야당 대통령 후보가 간첩죄로 처형당한 이력 때문에 글을 새기지 못한 것이다. 침묵의 언어라고나 할까.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던 대법원이 지난 2011년에 재심을 한 끝에 무죄를 선고했다. 사후 52년만의 일이다.



죽음의 공간에서 새빛 찾을수도

이웃하고 있는 한용운과 박희도는 어떤가. 3·1 운동 당시 똑같이 민족대표 33인에 이름을 올렸지만 끝까지 지조를 지킨 한용운은 괴팍한 승려생활을 했음에도 칭송이 끊이지 않는 반면 기독교 대표로 활동했던 박희도는 자치론을 펴는 등 친일로 돌아선 행적으로 인해 변절자라는 손가락질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간송 전형필의 멘토였던 오세창, 어린이들의 영원한 동무 방정환, 경찰관의 오발탄에 맞아 숨진 화가 이인성, 동요 ‘오빠생각’에서 말을 타고 서울 간 최신복, ‘남으로 창을 내겠다’던 김상용, 근대서양의학의 선구자인 지석영과 오긍선, 몰락한 왕조를 상징하는 명온공주가 저마다 드라마틱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한국의 나무와 민예를 사랑한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의 무덤에는 한국인이 세운 비석이 두 개나 있다.



망우리공원은 1933년 일제 강점기 때 서울시립망우리공동묘지로 지정된 이후 노고산과 미아리, 이태원에 있던 묘를 이곳으로 옮기면서 규모가 커졌고 지금은 산과 숲이 어우러진 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이름 없는 시민, 독립투사, 예술가, 정치인, 과학자, 의사, 가수 등 다양한 사람이 함께 안식하는 역사교육의 현장! 죽음의 공간에서 빛을 찾는 경건한 공부방이기도 하다.



손수호(객원 논설위원·인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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