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민주정치도 파산할 수 있다 기사의 사진

“증오의 과잉 표출은 정치적 디폴트로, 필경 민주정치의 파산으로 이어질 것”

미국이 한동안 연방정부 폐쇄와 국가부도의 악몽에 시달렸다. 여야가 잠정적 대안에 합의함으로써 일단 위기는 넘겼으나 충격이 예사롭잖다. 셧다운은 여러 차례 있었던 일이지만 디폴트가 현실 상황으로 눈앞에 닥친 것은 처음이다.

미국의 디폴트는 미국인만이 아니라 세계인이 함께 느낀 공포였다. 다행히 여야는 타협을 통해 파국을 모면했다. 아마 앞으로도 디폴트는 없을 것이다. 미국 정당과 의회의 이성이 마비되지 않는 한!

단지 가정일 뿐이지만, 만약 미국이 부도를 낼 경우, 그 정치는 어떻게 될까? 선진 민주주의는 유지될 수 있을까? 물론 미국 민주주의는 독립의 과정에서 구상되고 형성되고 구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민주주의가 유럽계 백인만의 사회를 넘어 미국인 전체로 확산되고 전 국가적으로 정착된 바탕에는 경제력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반대로 생각하면 이렇다. 미국이 디폴트 상태에 빠지면 미국 정치도 연쇄적 부도상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정부의 역할과 기능이 효과적으로 작동되지 못하고, 여야의 대결의식이 이성의 울타리를 걷어차고 뛰쳐나가 버릴 때 민주정치는 부도를 면할 길이 없다. 미국 민주주의의 파산 또한 전 세계에 걸쳐 연쇄반응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그리고 미국은 그 가능성의 일단을 현실에서 드러내 보였다.

‘민주주의도 파산할 수 있다!’ 기실 이는 우리 정부와 정치권에 보내야 할 위기 경보다. 주로 야당의 지도자들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하고 있는데, 실제 정치상황은 이들이 걱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안 좋다. 위기 정도가 아니라 ‘파산’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른 분위기다. 정치는 사라지고 패싸움만 요란하다.

대통령 선거란 ‘우리 모두의 대통령’을 결정하는 절차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적 패싸움의 전형’으로 이미지가 굳어졌다. 민주당은 박근혜 대통령 임기 내내 ‘불공정 대선’으로 압박할 태세다. 자신들의 고발로 수사 및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을 두고 기어이 국정조사를 실시했는가 하면 재판 결과도 나오기 전에 사과부터 하라고 박 대통령을 몰아댄다.

이 시대에 댓글이나 트위터가 어떤 성격과 의미를 가진 소통 및 표현의 수단인지, 그걸 잘 알 것이면서도 이를 문제 삼고 있다. 국정원 직원, 군 사이버 사령부 요원들이 댓글을 달고 트위터에 트윗 혹은 리트윗을 했으니 기관 차원의 조직적 개입이 아니냐, 그러니 헌법불복이 아니냐고 호통 친다.

국정원과 군이 조직적으로 대선에 개입했다면 이는 당연히 엄단해야 한다. 그러나 개인적 행위에까지 사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과잉규제일 것이다. 댓글, SNS 등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생활 그 자체가 되었다. 그래도 공무원이나 군 요원이기 때문에 정치성 댓글이나 트윗은 위법이라고 할 양이면 사이버 공간 전체, 그리고 SNS전부를 뒤져서 공무원, 군 요원의 글을 다 찾아내야 형평에 맞다.

국가의 디폴트는 과잉 재정지출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정치적 대결의식의 과잉표출은 민주주의 디폴트를 초래할 수 있다. 민주정치의 제도와 기구 및 참여자들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붕괴된다는 뜻이다. 그 끝은 민주주의의 파산이다.

미국 정당들과 의회는 이성을 발휘해 국가부도를 모면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떨까? 걱정스러운 것은 정치리더들의 언행에서 이성이 아닌 과장된 분노가 넘쳐난다는 사실이다. 말이 너무 거칠고 독하다. 이들은 세상이 금방이라도 끝날 것처럼 허풍을 떨며 상대에게 온갖 모진 말을 다 퍼붓는다. 감정·증오의 과잉은 정치력을 고갈시키고 필경 국민에 대한 채무불이행, 곧 정치적 디폴트를 낳는다.

‘민주주의의 위기’, ‘유신독재 부활’이라고 하는데 어쩌면 우리는 이미 그 상황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정치권이 국민을 상대로 지금 독재를 하고 있지 않은가! 국민의 희망·기대에는 아랑곳없이 오직 당리당략, 거기에 복수심까지 얹어서 날마다 극한투쟁을 벌이고 있는 이런 행태가 독재 아니면 무엇인지 누가 대답 좀 해 주시라.

이진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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