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덕환] 문·이과 통합 전에 해야 할 것 기사의 사진

교육부의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 시도가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고질적인 문·이과 구분이 없어질 것을 기대했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물론 교육부의 입장은 전혀 다를 수도 있다. 한국사를 수능에 포함시키는 것이 교육부의 진짜 목표였고, 문·이과 구분 폐지는 그런 목표를 위해 울렸던 변죽이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느닷없이 문·이과 구분 폐지를 들고 나왔던 교육부의 준비가 너무나도 어설프고 엉성했다는 점에서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논란을 통해 지난 20여년 동안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던 문·이과 구분 교육의 문제가 뜨거운 현안으로 떠오르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제 와서 잘못된 문·이과 구분 교육의 문제점을 시시콜콜 다시 들먹일 필요는 없다. 문·이과 구분의 폐지는 이미 1992년 제6차 교육과정개편에서 ‘공통사회’와 ‘공통과학’을 도입하면서 본격적인 준비가 시작되었고, 98년의 제7차 교육과정개편으로 분명하게 법제화된 것이었다. 다만 교육 현장의 준비를 핑계로 남겨두었던 수능에서의 구분을 제거하는 문제만 남아 있을 뿐이다. 20년의 준비 기간도 부족하다는 주장은 교육계의 심각한 직무유기다. 우리의 미래를 망치고 있는 고약한 일제의 잔재(殘滓)는 하루빨리 청산해야만 한다.

교육과정 개편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문과 성향의 학생들이 수학과 과학을 부담스럽게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 풀이에만 집착하는 수학과 위계적(位階的) 개념 교육에 매달리는 전문 기능인 양성 교육은 완전히 뜯어고쳐야만 한다. 수학적 논리의 중요성, 현대 과학을 통해 변화된 세계관, 인류 문명에서 기술의 가치를 바르게 이해시키는 새로운 교육이 핵심이 되어야만 한다. 교육의 성과를 파악하는 척도부터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교육과정 개편 작업을 개방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르치는 교사의 입장보다 배우는 학생의 입장을 더 강조하는 새로운 바람이 필요하다. 과학 교육과정의 개편에서 개방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과학자의 참여가 불가능했던 2011년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과학’ 교육과정은 물리·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의 양적 균형을 강조하는 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기초과학학회연합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2009년 고등학교 교육과정 개편의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물리·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의 고질적인 칸막이를 완전히 제거한 획기적인 ‘융합형 과학’이 등장했다. 만에 하나 이번 교육과정 개편에서 어렵게 만들었던 융합형 과학의 새로운 틀이 훼손된다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될 것이다.

사실 민주사회에서 폐쇄적인 인력 양성 구조의 폐해는 심각하다. 눈부시게 발전하던 원전 산업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것이 바로 폐쇄적인 원전 마피아였다. 일반대학의 교육과정이 유명무실해진 교직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학생들의 교육권보다는 교사 양성기관의 집단이기주의가 강조되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대학 진학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80%를 훌쩍 넘어버린 상황에서 교직을 개방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대학도 달라져야 한다. 사실 문·이과 구분이 가장 극심한 곳이 바로 문리과대학이 문과대학과 자연과학대학으로 해체되어 버린 대학이다. 이공계 대학을 위해 모든 고등학생들에게 어려운 수학과 과학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이미 준비가 끝난 ‘대학과목선이수제도’(UP)를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공계 학생들의 학력 저하보다 70%에 가까운 문과 학생들이 과학을 외면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훨씬 더 심각한 문제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과학커뮤니케이션)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