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 칼럼] 창조경제, 아직도 낯설기만 한 이유 기사의 사진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진 인재 양성하고, 현장에서 미래의 먹거리 발굴해야”

‘아무도 모르는 세 가지’란 퀴즈가 회자된 적이 있다. 두세 사람만 만나면 어김없이 세 가지는 대화를 풀어가는 화두였다. 세 가지가 ‘김정은 생각’과 ‘안철수 새정치’, 그리고 ‘박근혜 창조경제’라고 하면 모두 파안대소했다. 다들 공감한다는 이야기다. 얼마 전 대통령 의중을 잘 읽는다고 알려진 고위공직자를 만났다. 역시 세 가지가 화제가 되길래 ‘창조경제가 뭐냐’고 물어 보았다. 역시나 창조경제 핵심개념들이 줄줄 나왔다. 창조경제가 새 정부에서 얼마나 중요한 국정과제인지도 한참 부연했다. 그럼에도 얼른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마치 중간고사 보는 대학생이 모범답안을 달달 외워 옮겨놓는 듯한 생경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예의상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국민들이 얼마나 이해할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새 정부 출범 후 귀에 못 박히게 들었던 말이 창조경제였다. 창조란 단어 자체가 뭔가 새로움을 추구하는 듯한, 기대감을 주는 언어적 마력이 있다. 그래서인지 뭔가 좀 있어 보이기도 했다. 정부는 ‘창조경제’란 제목의 방안들을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그런데 요즘 창조경제란 말이 쏙 들어갔다. 여야가 사생결단하는 정쟁 속에 창조경제를 이야기할 시간이나 있었겠나 싶다. 그렇지만 국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게 ‘먹고 사는’ 문제이다 보니 여전히 창조경제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지난 9월 초 러시아를 방문한 박 대통령이 G20정상회의에서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창조경제 대표 사례로 들었다. 박 대통령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유튜브라는 새로운 매체와 결합돼 전 세계 17억인이 즐기며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했다”며 “창조경제는 사람의 머리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끌어내는 것을 원동력으로 하는 경제”라고 했다. 대통령 말대로 창조경제란 창의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이 기반 위에서 또 다른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래야 새로 일자리도 만들고 경제적 이익도 얻을 수 있다.

대통령의 말과 달리 정부가 쏟아낸 ‘창조경제’ 답안은 겉돌고 있다. 총론은 있으나 각론이 없다. ‘제2의 싸이’ 양성을 위해 문화부가 내놓은 방안들도 와 닿지 않는다. 미래 먹거리를 만들라고 신설한 미래창조과학부는 창조경제기획관 자리까지 생겼지만 ‘미래도, 창조도, 과학도 없다’는 지적만 받고 있다. 창의적 인재교육을 맡은 교육부는 해묵은 고교·대학 입시제도만 흔들며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그 사이 ‘과학자의 미래가 없다’면서 과학영재들이 꿈을 접고 있다. 상위 0.001%의 과학영재들이 의사, 판·검사가 되겠다며 의대나 로스쿨, 경영으로 전공을 바꾸고 있다. 이공계 출신 대통령이 나와 달라질 것이란 기대도 한때 했었다고 한다.

최근 삼성과 현대차 신입사원 전형에 무려 10만명이나 몰렸다. 우수한 젊은이들은 삼성 현대차 두 곳 외에 갈 곳이 없다고 탄식한다. 첨단기술의 강소기업도 미래가 안 보여 지원할 수 없다고 한다. 휴대전화와 자동차 두 제품으로 먹고 사는 한국경제의 미래에 암울한 전조가 아닐 수 없다.

‘창조’라는 문패를 달았던 정부 각 부처들이 구체적인 ‘창조경제’를 가동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공무원들은 윗사람 입맛에 맞춰 기안한 보고서를 올리면 그만이고, 관변 학자들은 외국의 생소한 이론으로 포장한 보고서를 올리다 보니 정작 창조경제의 현장이 없다. 새 정부 들어 임명된 ‘연륜 있는’ 고위공직자 면면은 창조경제와는 시간적 거리가 느껴진다.

이제 박근혜정부는 ‘창조경제’를 눈으로 보여줘야 한다. 과학 문화 예술 등 전 분야가 기반인 창조경제는 총론만으로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미래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각론을 내놓아야 한다. ‘이러면 나중에 먹고 살겠구나’라는 희망이 있어야 힘겨운 오늘을 버틸 것이 아닌가. 5년 전 이른바 ‘경제대통령’이 약속했던 공허한 7·4·7공약과 같이 창조경제가 ‘아무도 모르는’ 공약(空約)의 한 가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논설위원 kyungh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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