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걸기-장지영] 라쿠텐의 우승과 호간비이키 기사의 사진

지난 3일 일본 미야기현 클리넥스 스타디움. 2013 일본프로야구의 우승이 걸린 라쿠텐과 요미우리의 재팬시리즈 7차전이 열렸다. 라쿠텐의 홈구장인 만큼 라쿠텐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압도적인 것은 당연했지만 당시 방송을 지켜보던 일본 시청자 상당수가 라쿠텐을 응원했다고 한다.

평소라면 23번째 우승컵을 노리는 전국구 명문구단 요미우리를 응원했을 야구팬들도 이날만은 라쿠텐이 승리하길 기원했다. 바로 라쿠텐이 처한 특별한 상황 때문이다. 라쿠텐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지였던 동북지방 센다이를 연고지로 하고 있다. 그리고 대기업을 모기업으로 가진 다른 팀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인터넷 상거래 업체 라쿠텐이 2005년 창단한 뒤 줄곧 하위권을 전전해 왔다. 특히 창단 첫 해엔 양대 리그 도입 후 최다 점수차 영봉패인 0대 26으로 지는 등 리그 1위 소프트뱅크에 51.5경기차, 5위 니혼햄에 25경기차 뒤진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듬해에도 또다시 최하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라쿠텐은 이후 조금씩이지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모기업의 자금력이 약한 데다 구단 자체 경쟁력이 약한 만큼 대형 FA(자유계약선수)를 잡기보다는 신인 선수들을 육성해 왔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올해 라쿠텐 돌풍의 주역으로 정규리그에서 24승무패의 경이적인 성적을 기록한 투수 다나카 마사히로다. 그리고 2011년 부임한 호시노 센이치 감독의 지휘 아래 전력을 극대화시킨 끝에 마침내 우승까지 차지했다. 호시노 감독의 경우에도 오랜 감독 생활을 했지만 우승컵을 들어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라쿠텐의 우승 직후 일본 언론은 라쿠텐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기사를 앞다퉈 내보냈다. 이전까지 다른 팀이 우승했을 때와 비교해 훨씬 많은 지면과 방송시간을 할애했는데, 약자를 동정하고 그의 편에서 생각한다는 일본어 표현 ‘호간비이키’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호간비이키는 일본 역사상 최고 영웅으로 꼽히는 미나모토 요시쓰네의 일화에서 나온 것이다. 일본 최초 무사정권인 가마쿠라 막부를 연 미나모토 요리토모의 배다른 동생인 요시쓰네는 막부 정권을 창출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백성의 지지를 받는 동생을 시기한 형에게 쫓겨나 젊은 나이에 자결해야 했다. ‘호간’은 요시쓰네의 관직명이고 ‘비이키’는 편들다는 뜻인데, 당시 세상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은 그를 안쓰러워한 데서 비롯됐다. 이후 일본에서는 요시쓰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많은 작품이 만들어졌으며, 일본인들 스스로 자신들의 정신세계를 특징짓는 문구로서 ‘호간비이키’를 많이 쓰고 있다.

그런데 일본의 ‘호간비이키’는 자국 국민을 상대로만 사용되는 것 같다. 식민지 시대 위안부나 징용 노동자에 대한 일본의 태도를 보면 ‘호간비이키’라는 용어가 무색하다. 아베 정권은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담화’를 수정하려고 하고 있으며 게이단렌(經團連) 등 재계는 강제징용 노동자들에 대한 배상을 거부하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위자료 등을 포함한 모든 청구권 문제가 해결됐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일본이 한국을 포함해 주변 국가들과 좋은 이웃으로 지내는 한편 국제사회에서 존경을 받으려면 바로 ‘호간비이키’ 정신을 국내에서와 마찬가지로 해외에서도 가져야 할 것 같다.

장지영 체육부 차장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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