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벼랑으로 질주하기 기사의 사진

“정치권은 지금 함께 사지로 내닫는 치열한 공멸의 투쟁을 벌이는 중인가”

“Dramatic entry.” 치마를 밟고 넘어진 그 황당한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우리말도 아닌 영어로 한 조크다. “요란스러운 입장이지요?” 정도가 될 것 같다. 박 대통령의 영어 구사력 검증은 이로써 충분하다. 사색이 되었을 수행원들을 조크로 안심시켰다는 데서 남다른 배려심도 묻어난다.

“Quiet exit.” 만찬을 마치고 퇴장할 때 박 대통령은 이날의 드라마를 이 한마디로 정리했다. “요란스레 들어왔으니까 조용히 나가리다!”는 뜻이었을 듯하다. 물론 다른 뉘앙스로 들리기를 바랐을지 모르지만, 그것까지도 대통령의 서비스다. 상상의 즐거움을 함께 제공했으니까.

그런데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은 “‘극적인 입장’과 ‘조용한 퇴장’이 조크가 아니라 이 정권의 운명이 될 수도 있다”고 저주에 가까운 논평을 했다. 외국 순방 중인 여성 대통령을 향해서! 도대체 무엇이 한국 정치인들의 심성을 이처럼 거칠게 만들었을까?

박 대통령은 미국, 중국 방문 때처럼 프랑스와 영국 방문에서도 그 나라의 말로 연설을 했다. 이에 대한 민주당 김한길 대표의 반응은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공식 언어는 우리말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외교적 관례이고 원칙”이라고 훈계하듯 했다.

문학가로서 할 만한 말이긴 하다. 언어는 국민적 혹은 민족적 정체성·자존·긍지·자랑의 표현인 만큼 공식적인 연설에서는 모국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고집(?),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외교적 관례이고 원칙’이라는 말에는 선뜻 공감이 가지 않는다.

외교의 목표는 국가 간 우호의 증진과 교류 협력의 활성화일 것이다. 과거에는 국력과 국위를 앞세운 이익교환의 외교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감성외교 혹은 정서외교에 방점이 찍힌다. 아래로부터의 상호 이해, 마음으로부터의 친애가 바탕을 이룰 때 양국은 진정한 ‘친구의 나라’ ‘상부상조의 이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방문국의 언어로 연설을 한다는 것은 그 나라에 대한 깊은 이해와 친애를 표하는 행동이다. 과거 약소국이었을 때는 사대주의적 태도라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세계 유수의 경제 강국이다. 그런 만큼 대통령의 현지어 연설은 우리의 각별한 우정표현이고 방문국 국민들의 자존심에 대한 배려다.

유감스럽게도 민주당의 일부 리더나 의원들은 거친 언어습관에다 기억력 감퇴증세까지 갖고 있는 인상이다. 김 대표나 박 대변인만이 아니라 다른 의원 몇몇도 박 대통령의 외국어 연설을 비난하고 비아냥거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영어로 연설한 지 15년 5개월여 지났을 뿐인데, 어떻게 그처럼 깨끗이 잊어버릴 수 있었다는 것인지 신기하기조차 하다.(2002년 대선 때 민주당이 어떤 수법으로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궁지로 몰아 57만 표 차의 승리를 챙겼는지도!)

정당정치의 가장 중요한 덕목, 그 성공의 우선적 조건 가운데 하나가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생각한다. 달리 표현하자면 상호 배려와 존중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정당들이 보이고 있는 것은 역지사지를 통한 상생의 정치가 아니라 억지사지, 그러니까 서로 억지를 부리며 함께 사지(死地)로 빠져들고야 말겠다는, 치열한 공멸의 투쟁이다.

‘김한길 민주당’의 강경콤플렉스가 무엇에서 비롯됐는지를 정확히 안다고 할 수는 없으나 나름대로 짐작할 만은 하다. 정치지도자로서 성공하고 싶다, 동아리 밖으로 밀려나고 싶지 않다는 강박감 때문이 아닐까? 자신의 명예에 집착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강경 쪽으로 질주하는 인상이다.

김 대표의 ‘국민연대’ 전술은 ‘호랑이 등에 올라타기’나 다름없다. 일단 국민연대가 성립되면 김 대표의 위상과 역할은 위축되게 마련이다. 힘에 부친다고 주도권을 더 강경하고 더 야심만만한 ‘동지들’에게 넘기기 보다는 오히려 정치적 카운터 파트와 ‘역지사지’의 협상을 벌이는 게 현명한 방법임을 깨달을 일이다.

이진곤(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