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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발견] (45) 수능 샤프

[디자인의 발견] (45) 수능 샤프 기사의 사진

사람들마다 이해관계가 달라도 1년에 한 번은 놀라운 협동심을 발휘한다.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시간과 출근시간마저 대대적으로 조정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 날이다. 입시 준비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이 시험만큼은 ‘공정성’으로 똘똘 뭉친다. 어떤 부정이나 특혜도 개입할 수 없는 똑같은 조건을 제공한다. 심지어 필기구도 똑같다.

2006년부터 ‘수능 샤프’라는 것이 등장했다. 개인이 어떤 필기구도 지참할 수 없고 교육과정평가원에서 지급하는 것만 사용할 수 있다. 컴퓨터 사인펜은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왔지만 문제풀이용 필기구를, 그것도 매년 다른 디자인을 채택하여 65만명에게 일시에 나눠주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이번 수능에는 연두색 샤프가 지정되었다.

원래 ‘스타일’이라는 말은 필기구를 뜻하는 ‘스틸러스(stilus)’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필체가 곧 그 사람이고 필체는 자신이 갖고 있는 펜촉의 모양과 직결된다. 지금도 각자 취향을 반영한 필기도구를 사용한다. 이와 달리 수능 샤프는 특별한 디자인 요건을 갖추고 있다. 내구성과 사용성을 갖추면서도 동일성, 공정성이 핵심인 것이다. 수험생 입장에서 이 사물은 각별한 존재로 기억될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전리품으로, 또 어떤 이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물로.

김상규(서울과학기술대 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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