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배규식] 시간선택제, 제대로 해보자 기사의 사진

정부가 내년부터 2017년까지 공무원, 교사와 공공부문에서 1만6500명을 ‘시간선택제’로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삼성, CJ, 기업은행 등 민간부문에서도 정부 방침에 호응하여 시간선택제로 채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시간선택제 정책에 대해 국민들이나 언론의 반응은 미지근한 것 같다. 먼저 시간선택제라는 용어의 낯설음 때문이다. 시간선택제는 근로자들이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선택하여 양질의 시간제로 근무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말한다. 다음으로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과연 양질의 일자리가 되겠느냐는 의구심을 풀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공부문의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기존 정규직 일자리와 차별을 두지 않겠다고 정부가 공언한 만큼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민간 기업들이 정부 방침에 맞춰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했지만 아직은 미심쩍다. 그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과연 양질이며 고용이 보장되는 일자리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번 시간선택제가 제대로 정착되고 확산될 수 있다면 그동안 전일제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1주일에 2∼4일 근무하거나 하루 4∼6시간으로 줄여 일하더라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시간선택제 근무가 정착된다면 근무하는 방식이나 근무시간제도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것이다. 또한 일과 생활 간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시간선택제 근무 도입으로 경력단절 여성, 조기 퇴직한 중장년 남성들이 취업할 수 있는 문호를 열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시간선택제의 도입과 확산을 통해 일자리 창출 여지를 크게 넓힐 수 있게 됐다. 요즘 자주 거론되는 네덜란드에서는 주로 시간제 일자리를 통해 1990∼2000년에 25∼54세의 여성 고용률이 52.4%에서 70.2%로 17.8% 포인트나 올랐는데 창출된 시간제 일자리는 대체로 질이 좋은 정규직이었다. 네덜란드의 사례는 남성 외벌이 모델의 보수적 전통이 강한 사회에서 일어난 제도적 변화다. 한국에서도 이런 변화를 통해 일자리 창출, 여성 고용률 제고 등을 충분히 이뤄낼 수 있다.

그러나 시간선택제는 이제 첫 걸음을 떼었을 뿐이다. 시간선택제의 도입과 확산이 근로자들의 개인 혹은 가정의 필요나 일·생활 균형의 요구에 맞추어 일자리 창출로 귀결되려면 정부의 시간선택제 정책에서 보완해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절차상 시간선택제 도입에 대해 우려를 갖고 있는 근로자 대표나 노조와의 협의 혹은 업종별 노사정협의회 등을 통해 시간선택제에 대해 공론화가 필요하다. 시간선택제에 관한 노사정 협의를 거쳐 먼저 시범사업을 한 뒤 문제점 도출과 개선 방안 마련, 본격 시행이라는 절차상 단계적 접근이 요구된다. 정부가 시간선택제를 먼저 결정하고 밀고 나가면 근로자들의 우려 불식이나 협조 유도가 어렵고, 문제가 발생할 경우 고스란히 정부의 책임이 될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공무원과 공공부문에서 채용형 시간선택제만이 아니라 전환형 시간선택제(정규직 전일제의 정규직 시간제로 전환한 시간선택제)를 도입해야 한다. 셋째, 상시적 연장근로가 이루어지는 사업장의 장시간 노동문화를 개혁하고 정시에 퇴근할 수 있어야 시간선택제가 정착될 수 있다. 넷째, 전일제, 즉흥주의 문화에 익숙한 관리자들에게 시간선택제는 불편하고 낯설기 때문에 관리자들이 시간선택제를 수용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조직문화의 변화와 관리자 인식, 관리방식 개선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시간선택제 근로자들이 전일제 근로자들과 비교하여 차별이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적절한 업무량 부여, 적정 업무 스케줄 편성과 관리, 평가와 보상제도 개선 및 조직 내 의사소통 강화 등도 이루어져야 한다.

시간선택제는 풍부한 잠재력을 지닌 원석과 같다. 시간선택제의 여러 잠재력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잘 가꾸고 다듬어야 한다. 시간선택제가 정착되고 확산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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