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魂자수는 촉감으로 작품 느끼게 하는 스킨 리얼리즘” 기사의 사진

‘魂자수’로 세계 유명인사들을 놀라게 한 이용주씨

‘팝의 디바’ 셀린 디온(캐나다)은 그의 작품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그리스 여가수 나나 무스쿠리는 자신을 담은 초상화에 사인해달라고 요청했다. 세계적인 힙합그룹 블랙 아이드 피스(미국)는 작가를 만나기 위해 30분이나 기다렸다. 영화 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이탈리아)는 아예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세계 유명인사들의 넋을 빼앗은 주인공은 자수예술가 이용주(56)씨다. 그의 작품은 사람의 피부 결까지 살아 있어 사진 같고, 입체감이 느껴져 그림 같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만져본 다음에야 비로소 비단 실로 한 땀 한 땀 수놓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씨는 자신의 작품은 전통자수인 가색자수의 맥을 잇지만 그 기법은 전혀 달라 사실감과 입체감이 뛰어나다고 소개했다. “색상까지 완벽하게 칠한 그림 위에 수를 놓는 가색자수에서 한 걸음 나아가 꼬거나 풀어서 굵기를 달리 한 실을 직접 염색해 수를 놓습니다.” 그래서 머리카락 한 가닥, 수염 한 올, 주름 하나까지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다는 것. 그는 혼을 다해 수를 놓는다고 해서 ‘혼(魂)자수’라고 이름 붙였다. 혼자수를 예술 장르로 자리 잡게 하겠다고 나선 그를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CCMM 빌딩에서 만났다.

대표적인 규방 공예인 자수를 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고등학생 때였어요. 할머니께서 할아버지 얼굴을 그려 달라고 하시더군요. 그 그림 위에 비단 실로 수를 놓으셨어요.”

그는 가색자수 초상화에 반해 할머니에게 수놓는 법을 배웠다. 한동안 할머니 곁에서 자수를 놓던 그의 관심은 시나브로 글쓰기로 옮아갔다. 소설 쓰기에 푹 빠진 그는 자수를 까마득하게 잊었다. 1991년 소설가로 문단에 데뷔했고, 94년 신춘문예에도 당선했다.

“우리 사회 고질병인 학벌 차별이 작가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붓을 꺾었습니다.”

그는 철도고등학교와 방송통신대를 졸업했다. 철도고교는 당시 전액장학금에 취업이 보장돼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수재들이 모이는 곳이었지만 사회에선 이를 알아주지 않았다. 글은 자신 있었으나 ‘소설가로는 최고가 되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글쓰기를 접은 그는 문득 자수를 떠올렸다. 그때가 36세였다. 바늘을 다시 잡은 그는 마흔에 사실감과 입체감이 나는 자수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수놓았던 할아버지 초상화가 길잡이였다. 회사도 그만두고 몰입한 그는 혼자수로 2004년 발명특허를 받았고, 2008년 작품전을 통해 세상에 선보였다.

“혼자수는 촉감으로 작품을 느끼게 하는 스킨 리얼리즘(Skin Realism)입니다.”

작품은 문하생 20여 명과 손발을 맞춰 작업하고 있다. 밑그림과 비단 실 염색은 이씨가 직접 하고, 수는 이씨와 제자들이 함께 놓는다. 현재 척박한 땅에서도 늘 푸른 소나무 연작 시리즈, 명화를 재해석한 작품들, 유명인의 초상화 등 450여 점을 혼자수로 제작했다.

“혼자수 명화는 단순한 모사 작품이 결코 아닙니다. 원화를 재해석한 제2의 창작입니다.”

그는 2009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구스타프 클림트’ 전시회 때 VIP룸에서 가진 ‘이용주 클림트 전’을 그 증거로 들었다. 클림트 작품 중 국내에 오지 못한 작품들을 이씨가 혼자수로 제작, 같이 전시한 것. 그는 “단순한 모작이라면 어림도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씨는 2년 전 실크로드의 동쪽 끝으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경북 경주에 내려가 둥지를 틀었다. 이곳에 혼자수 미술관을 마련할 계획인 그는 미술관을 관광명소로 만들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고 있다.

“혼자수 명화들을 통해 방문객들은 한곳에서 세계적인 명화를 만나는 감동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그는 혼자수 명화를 소개하는 해외 유명 갤러리 순회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 그 첫걸음으로 내년 3월 ‘거장들의 예수님 생애 전시회’를 서울에서 한다. 혼자수로 제작한 르네상스 화가 라파엘로 보티첼리, 바로크 화가 카라바조 등 거장 58명의 작품 93점 중 80점을 추려 전시할 예정이다.

전시회는 소외된 이들을 위해 나눔과 봉사활동을 하는 사단법인 희망나무 커뮤니티가 주관한다. 전시회 수익금 일부를 어려운 이들을 위해 쓸 계획이다.

“앞으로 혼자수 작품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기증해 우리나라의 관광 콘텐츠로 활용하게 하고 싶습니다.” 그는 혼자수를 개발하느라 고생시킨 가족에게도 그의 뜻을 이미 전했다며 허허 웃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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