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산업유산의 유쾌한 재활용 기사의 사진

발전소는 어떻게 미술관이 되었는가/김정후/돌베개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는 2001년 세워진 가소메터 시티(Gasometer City·가스 저장고 도시)가 있다. 이름만으로도 흥미로운 이 곳의 이야기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892년 시작된다.

당시 유럽에 유행처럼 가스등이 보급되면서 빈 시(市)도 시내 전역에 가스를 공급하기 위한 저장고를 건설하기로 했다. 그 시대에도 일찍이 도시의 경관과 이미지를 중시했던 시는 단순한 산업용 가스 저장고임에도 설계 공모를 실시했다. 당선작은 독일 엔지니어 시밍(Shimming)의 설계안. 그는 1899년 외벽을 붉은 벽돌로 꾸며 유서 깊은 도시 빈의 경관과 조화를 꾀한, 4동으로 이뤄진 가스 저장고를 완공했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시는 주 연료로 천연가스를 도입했고, 제 기능을 다한 가소메터는 1986년 완전히 문을 닫았다. 놀라운 일은 이 때부터다. 시는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건물을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더 이상 가스 저장고가 필요하진 않지만 이 또한 도시 역사의 한 부분으로 보존하는 게 옳다는 것이었다. 이 곳이 비디오나 광고, 영화 촬영의 단골 배경으로 활용되는 동안 시는 재활용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시의 동쪽 외곽 지역에 떨어져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공간을 재활용할 방법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애초에 보존한 게 잘못이라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논란 속 고심 끝에 시가 내놓은 안은 파격 그 자체였다. 4동의 가스 저장고를 문화, 상업, 편의, 유흥 시설을 모두 갖춘 공동주택으로 개조해 작은 도시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영국 런던 템스 강변의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가 테이트모던 현대미술관으로 변신하는 공사가 한창이던 시기, 빈 시의 결정은 유럽에서도 큰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무엇보다 인기가 없는 공동주택을 건설해 지역의 고질적인 숙제였던 주거환경 개선과 가소메터 재활용이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한 것은 그야말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장 누벨, 쿠프 히멜블라우, 만프레트 베도른, 빌헬름 홀츠바우어 등 세계적인 건축가 4명에게 맡겨 탄생한 가소메터 시티는 현대적인 디자인과 고전적인 외벽이 어우러진 신세계로 탈바꿈했다. 현재 615세대와 지역 대학생을 위한 76개 기숙사로 구성된 가소메터 시티는 오스트리아 전역에선 물론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건축물이 된 것이다.

건축가이자 도시사회학자인 저자는 주로 런던에 머물면서 2007년 ‘유럽 건축 뒤집어보기’(효형출판), 2010년 ‘유럽의 발견’(동녘) 등 유럽 건축에 대한 대중서를 펴냈다. 이번 책에서는 건축뿐만 아니라 도시사회학으로 인식의 지평을 넓혀 유럽의 각 국이 산업 유산을 어떤 과정을 거쳐 탈바꿈시키는지 들여다본다.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등 각 국은 자기만의 문화적 특성을 토대로 저마다의 방식을 따라 양조장, 발전소, 제철소, 창고, 심지어 감옥 같은 산업 유산까지 미술관이나 박물관, 호텔, 미디어아트센터 등 새로운 공간으로 빚어냈다.

영국 런던의 낙후된 지역을 대표하는 이스트엔드의 오래된 양조장 ‘트루먼 브루어리’가 21세기 런던 디자인의 메카로 자리 잡는 과정을 통해 디자인 천국이라 불리는 런던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전쟁의 상처를 간직한 채 방치됐던 탄약 공장을 세계 최대 규모의 미디어아트센터로 개조한 독일 카를스루에의 사례는 이 나라 특유의 문화적인 저력을 보여주는 장면. 또 175년간 감옥으로 있던 혐오 시설을 매력적인 숙소로 변화시킨 핀란드 헬싱키 남부 카타야노카 호텔 등 흥미로운 14개 사례가 펼쳐진다. 책 제목을 보고 테이트모던이 제일 먼저 등장하지 않을까 기대한 독자들은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너무 유명한데다 저자의 전작에서 다룬 적이 있어 이번엔 빠졌기 때문이다.

건물의 단순 변천사를 소개하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펼쳐진 지역 주민과 지자체 행정가, 예술가들이 갈등을 빚고 소통하고 협력하는 모습까지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유럽 건축 책들과는 차별된다. 아울러 우리도 가장 한국적인 답을 찾을 때가 된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될 것이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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