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송세영] 흑과 백, 그 너머 기사의 사진

“피고인, ‘네’ ‘아니요’라고만 답하세요.”

법정 영화에 종종 나오는 장면이다. 검사나 변호사가 주인공 측 인물을 신문하면서 몰아세울 때 주로 등장한다. 관객은 신문자의 비열한 태도에 분노한다. 이 질문에 ‘예’와 ‘아니요’라고 답하는 순간 유도질문에 말려들게 돼 있어서다. 관객들은 알고 있다. 질문 자체가 ‘예’와 ‘아니요’라고 답할 수 없는 것이며, 이 질문의 답은 없거나 ‘예’와 ‘아니요’의 중간 또는 그 너머에 있다는 사실을.

흑백논리와 이분법의 함정

영화에서뿐 아니라 우리 삶도 비슷하다. 진실은 종종 ‘예와 아니요’ ‘흑과 백’ 사이 또는 그 너머에 존재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끊임없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받거나 요구한다. 머뭇거리면 적으로 간주되거나 배반자, 회색분자로 낙인찍히곤 한다. 흑백논리와 편가르기가 만연한 한국사회의 실상이 바로 그렇다. 그 정점에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사독재자인가. 그렇다. 그는 경제개발을 성공시킨 지도자인가. 역시 그렇다. 진실은 종종 다면적이고 복잡하다. 박정희는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인권을 탄압한 군사독재자였지만 국가안보와 경제개발에 공이 많다고 하는 게 진실에 가까운 모습일 것이다. 김대중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공도 있고 과도 있다. 과는 미미하고 공은 지대한 위대한 인물도 아니고, 공을 무시할 정도로 과가 많은 형편없는 인물도 아니었다고 하는 게 진실에 가까운 평가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예’와 ‘아니요’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거나 강요받는다. 답변하는 순간 그는 ‘종북’과 ‘수꼴’ 중 하나가 된다. 유도질문에 말려든 것이다.

진실은 종종 복잡하고 어렵다. 때로는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런데도 진실이 단순명쾌하고 선명하다고 외치는 이들이 있다면 의심해봐야 한다. 화려한 수사 뒤에 이해관계나 이데올로기가 숨어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해관계와 이데올로기는 지성과 이성의 눈을 멀게 하고 결국 야만으로 이어진다. 역사적 사례도 많다.

나치 독일은 유대인들의 부정적 측면들만 부각한 뒤 국민들에게 ‘네’와 ‘아니요’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요구했다. 그들이 선택한 ‘아니요’는 유대인 대량학살로 이어졌다. 철학의 나라이자 문명국가인 독일에서 인종청소와 같은 야만이 국가적으로 합리화되고 정당화된 것이다. 나치 집단의 권력욕과 국수주의 이데올로기는 흑백논리와 이분법을 교묘하게 활용했고, 여기에 넘어간 독일 국민들은 전쟁과 약탈, 학살로 이어지는 야만의 길로 들어섰다.

한국교회는 깨어 있어야

불행하게도 한국교회 역시 흑백논리와 이분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세계교회협의회(WCC)를 둘러싼 찬반 갈등에서 일부 인사들은 이 같은 잣대를 들이대며 공방을 주고받았다. 교회 내 분쟁도 종종 극단적 대결로 이어진다. 작은 비리나 갈등에서 출발하지만 종국에는 상대방을 사탄이나 마귀로 비난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한국교회 내 진보와 보수의 갈등은 우리 사회의 대립 양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야만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 시대, 한국교회는 깨어 있어야 한다. 흑백논리와 이분법의 갈등, 대결에 편승해선 안 된다. 진실의 편에서 중재자, 화해자의 노력을 감당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먼저 흑백논리와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실과 정의를 가장한 거짓, 탐욕에 현혹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종교부 차장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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