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거기 가서 정의를 구현하라” 기사의 사진

“다음 대선까지 ‘불법대선, 대통령 퇴진’ 소리 질러대면 야당이 정권 차지할까요?”

“안방에서 활개 치듯 안전한 서울광장 촛불시위에서나 앞장서지 말고, 삭풍과 탄압이 휘몰아치는 광야로 나가라. 그대들이 시위하고 소리칠 곳은 안전한 이곳이 아니라 생명이 위협받는 북한의 강제수용소 앞이나 탄압의 현장이다. 그곳에서 교회 수장을 성토하는 용기로 김정일과 지도부를 성토하라. ∼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제들이라면 그곳에 가서 정의를 구현하라.”

2010년 12월 13일 이회창 당시 자유선진당 총재가 정진석 추기경을 ‘골수반공주의자’라고 비난한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해 한 말이다. 논설위원으로 18년6개월, 퇴직 이후 논설고문으로 6년째 정치 문제에 대해 논평을 해 오고 있지만 이분과는 일면식도 없다. 그런데도 그의 이 사자후는 늘 엄한 가르침으로 귓전을 맴돈다.

그렇다고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해 일찍이 안 좋은 감정을 가진 바도 없다. 젊은 시절에는 이분들에게 민주화의 희망을 걸었다. 당연히 정치 민주화에 이분들의 기여가 컸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사제인 이분들이 민주화 이후에도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일종의 연고권 주장, 그러니까 민주화에 기여한 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욕심으로 비친다. 아니면 ‘신의 정의’ ‘신의 섭리’에 대한 해석권을 자신들이 독점하고 있다고 믿는 오만이거나….

하필이면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 도발 3주년을 하루 앞둔 22일 이들 중의 한 분이 강론을 통해 이런 말을 했다.

“독도는 우리 땅인데 일본이 자기 땅이라고 하면서 독도에서 훈련하려고 하면 대통령이 어떻게 해야 해요? 쏴버려야 하지. NLL에서 한·미 군사운동을 계속하면 북한에서 어떻게 해야 하겠어요? 북한에서 쏴야죠. 그것이 연평도 포격이에요.”

그 NLL 말인데, 그게 왜 생겼는지, 그 연세라면 모를 리 없다. 북한이 불법 남침을 자행한 결과다. 38선 이남의 육지와 바다는 원래 우리 것이었다. 6·25 때문에 땅은 빼앗겼지만 바다는 우리가 통제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크 웨인 클라크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 북방한계선이라는 것을 설정, 우리 바다를 인심 좋게 침략자들에게 양보했다. 바로 그 NLL의 인근 해역에서 한·미가 군사훈련을 하는 게 일본이 독도에서 군사훈련을 하는 것과 같다는 셈법,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NLL은 유엔군 사령관이 우리 쪽에서 북한으로 가지 못하게 잠시 그어놓은 거예요. 북한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고, 휴전협정에도 없는 거예요.”

옳은 말이다. 클라크가 아니었다면 북한은 그 해역에 단 한 척의 배도 띄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날의 ‘불법·부정선거 규탄과 박근혜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에서 강론을 맡은 이 원로 신부는 “민주주의가 붕괴되고 유신시대로 회귀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처럼 위협적인 상황에서도 ‘대통령 사퇴’를 요구할 수 있었다면, 그 정의감과 용기로, 평양에서도 미사를 집전해줄 수 있지 않을까? ‘김정은 사퇴’를 외치면서! 이민족인 몽골의 대통령조차 김일성대학에서 “영구히 지속되는 폭정은 없다”고 했다지 않는가.

신앙적 자기 과신이 너무 확고해 보이는 분들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구현’사제단의 이름으로 ‘대통령 사퇴’를 요구할 일은 아니라고 말해줘야 할 것 같다. 민주당에 의한 허위 폭로가 자행됐던 2002년의 대선 과정과 그 결과에 대해 한 번도 비판한 바 없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사람 따라, 정당 따라 신부님들의 잣대가 달라진다는 것일까? 아니면, 마초이즘이 신부님들의 고결한 영혼에까지 파고든 탓일까? 갈수록 ‘여성 대통령’을 거북해하거나 만만히 보려는 기류가 정치권 안팎에 조성되고 있는 느낌이다. 여성 대통령에 대한 불복심리를 들키지 않으려고 ‘유신부활’ 따위를 명분으로 삼는 것 같기도 하고….

야당과 그 지지자들은, 박 대통령 임기 내내 ‘대통령 하야’를 외치면, 그 힘으로 차기 정권을 차지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니 누구에게라고 할 것 없이 물어볼 수밖에 없네요.

이진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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