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손수호] 하늘도서관 가는 길 기사의 사진

내게 11월의 가장 기분 좋은 뉴스는 동네에 도서관이 들어섰다는 사실이다. 가까운 곳에 신문이나 잡지, 책을 편하게 볼 수 있는 공간을 가진다는 것은 행운이다. 집이 마땅치 않은 사람들은 책을 들고 넓고 쾌적한 커피숍으로 간다고 하던데, 주변에 그런 곳도 없거니와 중년의 입장에서 약간의 눈치까지 보이니 도서관이 더욱 반가울 수밖에.



도서관이 생긴다는 소식을 구청 정보지에서 처음 접했을 때 좀 긴가민가했다. 도서관 전용 건물을 짓는 것도 아니고 구청 안 어디에 꾸민다고 하기에 구석지거나 후미진 곳을 꾸미는가 싶었다. 민원인들이 쉬는 휴게실에 책을 좀 비치해 놓고 생색을 내는 게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다. 보안에 집착하는 공무원들의 습성을 감안한 짐작이었다.



그러나 지난주 찾아본 하늘도서관은 구청의 맨 꼭대기 12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남쪽으로 유유히 흐르는 한강이 보이고 북으로는 북한산의 준봉이 바짝 다가선다. 동쪽으로는 여의도의 마천루가, 서쪽으로는 월드컵경기장과 하늘공원의 바람개비가 시선에 들어온다.



시민 위해 명당 내놓은 마포구

이런 명당이 주민들에게 개방됐으니 어찌 사람들이 모이지 않겠는가. ‘책으로 기둥을 삼고 꿈으로 지붕을 엮은’ 이곳에는 남녀노소 구별이 없다. 동영상 강의를 듣는 학생, 그림책을 마주한 모녀, 스탠드바처럼 생긴 자리에 앉아 강물을 바라보며 글 쓰는 젊은이가 있다. 돋보기 쓴 노인들도 많다. 담소방에서는 엄마들의 가벼운 수다가 펼쳐지고 옥외정원에서는 머리를 식힐 수 있다.



도서관은 구청장의 진정성에서 출발했다. 470㎡ 남짓의 작은 규모라곤 해도 예전에 자기들끼리 조례를 하고 회합하던 독점적 장소를 시민들에게 내놓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것도 아니고, 12층을 내놓으라는 시민들의 민원이 빗발치지도 않았다. 일을 하다 보니 다른 구에 비해 도서관 환경에 취약한 것을 알았고, 주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기니 자연스레 이런 아이디어가 나왔던 것이다. 먹다 남은 빵을 이웃에 주는 것보다 자기 몫의 빵을 나누는 것이 더욱 의미 있지 않겠는가.



물론 까칠한 질문이 있을 수 있다. 내년 6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아느냐고? 그러나 도서관에는 선거를 염두에 둔 정치공학의 냄새보다 책이 뿜어내는 지성의 향기가 우세함을 어쩌랴. 도서관에서 저렇게 좋아라 하는 아이들은 정작 선거권이 없다. 그리고 개명된 사회에서 선거는 이제 일상 아닌가.



도서관은 ‘문화복지’의 종결자

하늘도서관이 이토록 후한 점수를 받는 것은 우리의 도서관 인프라가 그만큼 취약하다는 방증이다. 더욱이 도서관을 중심으로 각종 인문학 강좌나 주민들의 문화동아리가 이뤄지니 더 이상 독서공간이 아니라 커뮤니티의 공회당 혹은 문화사랑방으로 진화한 지 오래다. 지방으로 내려가면 다문화 사회를 통합하는 용광로의 현장이 되면서 명실공히 문화와 복지를 아우르는 센터 역할을 맡게 됐다.



따라서 우리는 도서관을 더 많이 지어야 한다. 1000만 인구의 서울에 공공도서관 109개인 데 비해 1200만이 사는 도쿄는 384개라고 한다. 공간의 품위도 중요하다. 서구의 공공도서관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공동체의 경의를 담는다. 우아한 대리석 기둥을 쓰고 오크 나무로 책장을 짜는 것은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책이 상징하는 정신성을 존중하는 태도가 있기에 가능하다.



“천국이 있다면 도서관처럼 생겼을 것”이라고 말한 사람은 작가들의 스승으로 일컫는 보르헤스다. 뉴요커들은 뉴욕공공도서관을 나타내는 사자 모양의 붉은 깃발을 보면 뿌듯한 자긍심을 느낀다고 한다. 우리의 구청 건물 꼭대기마다 도서관이 들어서고, 거기에 아름다운 도서관 깃발이 펄럭인다면 대한민국의 지성도 하늘의 별처럼 빛날 것이다.

손수호(객원 논설위원·인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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