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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5일 소천 前 주월사령관 채명신 장로 “전장의 불길 속에서 하나님은 나의 방패”

11월 25일 소천 前 주월사령관 채명신 장로 “전장의 불길 속에서 하나님은 나의 방패” 기사의 사진

“남북이 다같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전쟁은 절대로 방지해야 합니다. 상대방을 올바르게 알고 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뜨거운 기도로 간구해야 합니다.”

초대 주월 한국군사령관을 지낸 고 채명신(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 예비역 중장이 생전 한국교회 부흥집회에서 누차 강조했던 말이다. 지난 25일 향년 87세를 일기로 소천한 고인의 간증은 투철한 국가관과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의지하는 깊은 신앙의 세계를 보여 준다.

독실한 그의 신앙은 외가에서 비롯됐다. 외조부 박진준 장로는 구한말 일찍이 하나님을 영접했다. 이후 평남 중화군 신흥면 대기압리에 300여명이 예배드릴 수 있는 교회를 세우고 복음전파는 물론 민족정신 고취, 미신타파, 금주·금연 등 절제 운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권사 어머니를 비롯, 교회 성도들의 뜨거운 기도와 찬양은 날이 갈수록 거세지는 신앙의 불길로 이어졌다. 그는 이런 성령의 뜨거움 속에서 성장했고 이후 신앙생활은 삶의 중심이 됐다.

8·15 해방의 감격과 기쁨도 가시기 전에 기독교를 적대시하는 공산주의 체제가 들어서면서 그는 신앙생활 포기와 북한 탈출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등 사회주의사상에 정통했으나 평양으로 와서 함께 일하자는 김일성의 제의를 거절했다. 일제통치와 공산치하의 경험을 통해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존중되는 체제에서만 신앙의 자유와 인간다운 생존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1947년 그는 결국 38선을 넘었다. 어릴 때부터 목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신앙의 자유를 위해 공산주의를 막을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군인의 길을 택했다. 1948년 육사 5기로 졸업한 그는 제주 4·3 사건과 송악산 전투에서 수차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남았다.

6·25 전쟁 중에는 인민군에게 포위돼 체포되기 직전 자결을 시도했다. 하지만 “죽지 말라는데 왜 죽습니까”라는 부하의 말을 하나님의 계시로 알아듣고 사지에서 탈출했다.

베트남전쟁 때도 수류탄 투척과 숙소에 대한 로켓포 및 기관총 집중 사격을 이겨내고 살아남았다. 절체절명의 위기 때마다 “하나님께서 방패가 돼 주셨다”는 그의 간증은 듣는 이들의 마음에 큰 감동을 줬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5·16 쿠데타에 가담했던 그는 유신체제에 반대하고 독재를 비판하며 직언을 하다 예편 당했다. 이후 그는 고엽제 피해자를 위해 늘 기도하며 참전 용사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힘써 후배 장병들에게 참 군인의 표상이 됐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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