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이만섭 前 국회의장, 정국 해법을 말하다 기사의 사진

“국회는 오직 국민의 국회… 파행·마비는 범법행위”

끊임없는 정쟁으로 국회가 사실상 마비 상태다. 정기국회 폐회일이 눈앞에 다가왔음에도 법안을 단 한 건도 처리하지 못했으며, 내년도 정부 예산안은 처리 법정시한(12월 2일)을 넘겼음에도 심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준예산을 편성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치가 완전히 실종됐다는 비판은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계 원로이면서도 당적을 갖고 있지 않아 현실 정치에 대한 평가가 비교적 자유로운 이만섭 전 국회의장을 만나 정국 해법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2일 오전 국민일보사 5층 대회의실에서 2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이 나라 국회는 여당의 국회도 아니요, 야당의 국회도 아니요, 그렇다고 청와대의 국회도 아니다. 오직 국민의 국회다. 국회를 마비시키는 것은 범법 행위이자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파행 국회에 대한 이 전 의장의 비판은 거침이 없었다.

-정쟁 심화로 국회가 끝없이 겉돌고 있다. 전직 국회의장으로서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는가.

“여야 모두 국민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 국민이 바라는 것은 경제를 살려 일자리를 많이 창출해 달라는 것이다. 또 부동산 경기를 살리고 전세대란을 막고 내수를 신장시켜 돈이 돌아가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국회가 이를 위한 관련 법안을 한 건도 처리해주지 않아 국민에게 불신을 넘어 저주의 대상이 됐다. 지금 국민은 일 안 하는 국회를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여야 의원들도 가족이나 친구, 지역구 참모 등을 통해 이런 여론을 듣고 있을 텐데 아마 이성이 마비되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이라도 예산안과 주요 민생법안은 우선순위를 따져 하루빨리 처리해야 한다.”

-국회 파행의 주범인 정쟁의 책임은 누구한테 있다고 보는가.

“여야 모두에게 있다. 물론 야당이 40여일간 천막당사를 왔다 갔다 하며 시간을 낭비한 것도 문제지만 여당의 정치력 부족도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국회 마비는 제1당인 여당의 책임이 크다. 정치력을 빨리 회복해야 한다. 과거 역사에서 보면 강경파가 득세하는 정권과 정당은 반드시 망한다. 자유당과 공화당이 그랬다.”

-대통령과 청와대의 책임도 크지 않나.

“청와대는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 그러나 항상 국회와 소통하고 야당과도 활발하게 대화해야 한다.”

-청와대 정무기능이 무위에 빠져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원칙적으로 야당과의 통로는 여당이 돼야 한다. 여당이 청와대 눈치만 볼 것이 아니라 야당과 적극 소통해야 한다. 청와대가 사사건건 간섭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국회의장이 역할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회의장의 역할이 중요하다. 나는 국회의장 시절 세 번 의사봉을 두드리면서 한 번은 여당 의석, 한 번은 야당 의석, 또 한 번은 방청석을 쳐다보았다. 방청석을 쳐다본 것은 국민 여러분에게 양심의 사회봉을 친다는 것이다. 모든 걸 국민 입장에서 일을 하면 풀린다. 나는 국회선진화법이 없었음에도 날치기는 물론 직권상정 한 번 한 적이 없다. 국회를 어떻게 원만하게 이끌지는 국회의장의 리더십에 달렸다고 보면 된다.”

-정쟁의 핵심인 지난해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을 어떻게 보시는지. 국정원 개혁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 국민들이 대선 때 국정원 댓글을 보고 투표했다고 말하는 것은 유권자를 무시하는 것이다. 국민 대다수가 국정원 댓글이 있었다는 것 자체를 몰랐을 것이다. 부정선거 운운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시한 적도 없고 덕본 것도 없다고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앞으로 국정원을 비롯한 어떤 정부기관도 선거나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나도 1969년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해임건의안을 내면서 ‘중정은 정치 간섭 절대로 하지 말고 대공 업무에만 전념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국정원 개혁은 청와대에 미룰 것이 아니라 여야가 국회에 특위 같은 것을 만들어 입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박 대통령도 국정원 개혁에 대해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본다. 국정원이 향후 선거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여야가 힘을 합해야 한다.”

-야당은 특별검사제를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검찰을 믿지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지금 검찰이 수사 중이기 때문에 결과를 보고 미진할 경우 여야가 협의해서 결정하면 된다. 여당이 굳이 반대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검찰 수사 결과가 중요하다.”

-천주교 일부 사제들의 정치적 발언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있다. 성직자의 정치참여에 대한 생각은.

“종교인들이 정치에 사사건건 개입하는 것은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존경하고 친애하는 염수정 대주교(천주교 서울대교구장)도 얘기한 바 있지만 사회와 정치 부조리는 복음을 통해 고치도록 노력해야 한다. (시국선언을 한) ‘실천불교승가회’는 조계종 총무원에서 무게를 두지 않고 있는 조그마한 단체에 불과하다.”

-박 대통령이 당선된 지 1년 가까이 됐다.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능력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과 리더십을 비교한다면.

“흔히 박 대통령보고 불통 대통령이라고 하는데 만약 박 대통령이 여성으로서 소신 없이 우왕좌왕한다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되겠는가. 박 대통령이 확고한 소신과 책임을 갖고 일하는 것은 좋다고 본다. 박 대통령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장점을 모두 본받아 소신과 추진력이 있고,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갖춘 분이다. 다만 앞으로 영국 대처 총리와 같은 강한 의지와 추진력에다 독일 메르켈 총리처럼 인내하면서 설득하고 소통하는 리더십을 함께 갖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두 리더십을 다 활용했으면 좋겠다.”

-박 대통령이 선거 때 자기를 도와준 정치인들을 지나치게 중용한다는 비판이 있다.

“선거 때 자기를 도와주고 믿는 사람을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용인술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면서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선거 때 도움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전 언론계가 좋지 않게 평가했던 윤창중씨를 청와대 대변인에 기용해서 박 대통령이 얼마나 손해를 봤는가.”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신당 창당 준비에 들어가고, 이에 맞서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면서 야권이 대선 후보 경쟁에 들어간 느낌이다. 어떻게 전망하는가.

“문 의원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문제와 관련해 대통령기록관에 자료를 넘기지 않은 데 대해 죄송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정국 혼란이 왔다는 데 대해 책임을 느껴야 한다. 대선 출마는 자유지만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가슴에 새겨야 한다. 박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문 의원이 직접 전화를 걸어 ‘당선을 축하한다. 앞으로 잘해 달라. 나도 필요하면 나라를 위해 돕겠다’고 했을 때 나는 그에게서 희망을 보았다. 하지만 그 후 사사건건 말을 바꾸어서 1년 동안이나 물고 늘어진 것은 보기에 딱하다. 안철수 의원의 경우 그의 언행을 보면 뭐가 뭔지 종잡을 수가 없다. 정당을 언제 누구랑 만들 것인지 안개만 피우고 있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그가 말하는 ‘새 정치’가 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대권에 생각이 있다면 좀 더 분명하고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밝혀야 한다.”

-여권에선 아직 차기 주자가 잘 안 보인다.

“김문수 경기지사와 김무성 의원, 정몽준 의원 같은 사람이 눈에 띄는데, 국민 지지를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만섭 전 의장은

이만섭은 ‘걸어다니는 대한민국 정치사’라 불린다. 이승만정부와 윤보선정부, 박정희 군사정부 시절 7년간 정치부 기자 생활을 했다.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발탁으로 국회의원이 된 이후 노무현정부 때까지 41년간 8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2004년 정계를 은퇴할 때까지 여러 정당의 대표 등을 지내면서 격동의 한국 정치를 온몸으로 체험했다. 김영삼정부와 김대중정부에서 두 번 국회의장을 역임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총애를 받으면서도 삼선개헌을 끝까지 반대하는 등 최고 권력자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정치인으로 평가된다. 또 40여년 정치를 하면서 금품수수와 같은 비리 구설에 단 한 번도 오르지 않은 청렴한 정치인으로 꼽힌다. 국회의장 시절, 청와대의 날치기 처리 요구를 거부한 것과 의장의 당적 보유를 금지하는 입법을 통해 최초의 무당적 국회의장이 된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를 지낸 부인 한윤복(81) 여사와의 사이에 2녀1남을 뒀다.

△대구(81) △대륜중(6년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동화통신,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6·7·10·11·12·14·15·16대 국회의원 △한국국민당 총재, 신한국당 대표서리, 국민신당 총재,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 △14·16대 국회의장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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