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 칼럼] 연중기획 독일시리즈를 마치며 기사의 사진

“메르켈 무티리더십으로 어젠다2020을 실천하며 미래한국의 성장판을 열어가야”

2013년 한국은 통일 직전의 독일을 빼닮았다. 분단국가에 이념충돌, 정치권 대립과 사회분열, 노사갈등, 집단시위, 실업 문제 등 독일도 똑같은 숙제를 떠안고 있었다. 당시 독일사회에도 미래가 없다는 절망감이 팽배했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독일은 하나가 되었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막대한 통일비용에 독일은 1990년대 내내 유럽의 병자(病者)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그런 독일이 되살아났다. 최근 10년의 반전이다. ‘또다시 독일의 세기(世紀)인가’할 정도다. 남유럽 젊은이들이 괴테문화원에서 독일어를 배우고 독일로 일자리를 찾아간다.

독일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뭘까. 그래서 1년 전인 지난해 12월 11일 국민일보는 연중기획 ‘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를 시작했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생뚱맞다는 안팎의 소리도 들었다.

그런데 독일 바람이 빨리, 거세게 불었다. 미국식 모델이 지배적 패러다임이었던 한국의 자화상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자성이 그만큼 깊었던 셈이다. 타협 없는 사생결단의 3류 정치만 벗어나도 선진국 대열에 들어갈 것이란 국민적 불신도 한몫했다.

정치권이 먼저 독일을 주목했다. 지난 4월 새누리당 의원 52명이 ‘대한민국 국가모델연구회’라는 독일연구모임을 발족하더니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도 앞 다퉈 독일 공부를 시작했다. 국회의원 150여명이 매주 독일 공부를 한다. 내년에는 내각제 등 독일식 권력구조 개편안이 나올 것이라고 한다. 여야가 머리를 맞댄 자체가 이색적이다. 국내 언론도 독일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매일경제신문의 ‘독일에서 배운다’와 KBS의 ‘히든챔피언’, MBC의 ‘독일, 미래를 이끌다’ 등 특집은 독일 열풍을 대변한다.

독일은 우리에게 교과서와 같다. 기독교 소명의식은 독일인들의 삶 그 자체다. 소명의식을 기반으로 독일은 대화와 상생의 정치, 성장과 분배 시스템, 창의인재 교육, 기업 간 협업을 가동시킨다. 또한 탄탄한 제조업을 기반으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이겨내고 유럽 최강의 경제력을 창출했다. 100∼200년 넘게 대물림하는 가족기업, ‘작지만 강한’ 히든챔피언만도 1350개가 넘는다.

스웨덴 등 북유럽이나 이스라엘 등 어느 나라보다 독일이 한국에 잘 맞는 국가 모델이다. 그런 만큼 단순 모방이 아닌 창조적 벤치마킹이 필요하다. 시리즈 내내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이 돋보였다. 7년 전 독일은 메르켈을 선택했고, 7년 후 그는 새로운 독일을 만들었다. 3선 연임에 성공한 메르켈은 지난 2006년 10월 총리 취임 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 지도자’로 자리 잡았다. 그는 포용과 설득, 의지와 결단, 미래 비전을 골고루 갖췄다. ‘엄마’라는 뜻의 무티(Mutti) 리더십이 독일을 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 아닌가 싶다.

메르켈이 박근혜 대통령의 롤 모델이라고들 한다. 박 대통령은 2000년 독일 방문 당시 야당 대표였던 메르켈을 처음 만났다. 두 지도자는 참 닮았다. 실제 박 대통령은 여권 내 ‘여성 대권 불가론’이 불거지자 ‘메르켈의 독일을 보라’며 정면 돌파했다. 박 대통령으로선 독일과 메르켈이란 큰 자산을 갖고 있는 셈이다.

우리도 미래로 가야 할 때다. 지난 몇 년간 독일이 그랬듯이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일궈야 한다. 통일도 관념론이 아닌 현실론으로 준비할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정치가 독일의 신·구 정권 간 정책 계승을 배웠으면 한다. 지난 2003년 슈뢰더 전 총리의 ‘어젠다 2010’을 메르켈이 계승함으로써 독일의 ‘닫힌 성장판’을 열었다. 미래를 위한 국가 업그레이드에는 좌우도, 여야도 따로 없었다.

지금 한국판 어젠다가 필요하다. 2020년 초일류 국가로 가는 로드맵 ‘어젠다 2020‘을 만들어 하나씩 실천해야 한다. 곧 책으로 출간되는 독일 기획 시리즈가 어젠다 2020의 디딤돌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5년 후 ‘어젠다 2020’을 차기 대통령 당선자가 계승하는 아름답고 성숙한 정치문화를 보고 싶다.

김경호 논설위원 kyungh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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