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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대담] ‘한국교회, 어떻게 화해의 역사 만들어야 하나’… 손인웅·지형은 목사에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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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정죄보다 연합·일치하면 사회도 따라할 것”

국내적 분열과 갈등, 방공식별구역 경쟁으로 떠오른 한반도 주변 4강의 역학 관계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진보와 보수, 세대와 정파 간 갈등은 흡사 구한말을 연상케 하고 이를 치유해야 할 기독교계 또한 분열과 반목 속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화해와 치유를 선포한다. 교회는 어떻게 화해와 용서의 역사를 만들 수 있을까.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 손인웅 명예회장(덕수교회 원로목사)과 지형은 성락성결교회 목사가 지난 4일 국민일보 창간 25주년을 맞아 국민일보사에서 대담을 갖고 그 가능성을 제시했다.

△지형은 목사=화해와 치유는 비기독교 사회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금의 교계 현실은 기독교 내부에서조차 화해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서로 반목하고 비판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일까요.

△손인웅 목사=나 자신을 포함해 신앙의 본질에 충실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십자가 사건에서 자신이 죽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못한 점이 그대로 노출된 것입니다. 중생한 체험이 있어야 화해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데 이게 부족한 것입니다.

△지 목사=최근 기독교가 안고 있는 왜곡된 구조는 신앙 본질에 충실하지 못한 결과라는 지적인데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 십자가를 체험하고 이를 자신의 내적 정체성으로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현재의 교계 현실에서 십자가와 부활 사건의 핵심 메시지인 화해와 치유가 가능하다고 보시는지요.

△손 목사=과거에는 복음과 성령의 역사를 통해 용서와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최근엔 신앙과 영성이 약화되면서 인간적인 죄성이 더 부각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희망을 가지는 것은 1998년 한목협 운동을 전개하면서입니다. 한목협은 당시 한국교회의 외적 성장세가 둔화되는 시점에서 출범했습니다. 14개 교단의 뜻있는 목회자들이 만나 십자가와 부활, 성령의 역사와 하나 됨을 추구했습니다. 상대방의 약점을 보는 대신 교회를 생각하고 주님의 섭리에 복종하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2007년 성령강림 100주년 행사는 그런 일치의 결과였고 옥한흠 목사는 애통하면서 한국교회의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신앙 본질 회복과 연합운동의 병행 필요

△지 목사=최근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 총회가 폐회했습니다. 개최와 관련된 논란이 많았지만 WCC의 일치 선언은 적어도 분열된 한국교회를 향해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손 목사님은 평생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제도적인 화해와 일치를 위해 애써 오셨습니다. 특히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한 지붕 씌우기론’으로 하나 됨을 추구했고 이른바 ‘일치 갱신 봉사’라는 ‘URD운동(Unity, Renewal, Diakonia)’을 강조해 오셨습니다. 화해와 치유를 위한 내적 조건이 십자가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외적 조건은 무엇이 될까요.

△손 목사=WCC 총회를 준비하면서 느낀 것은 다양한 교파들이 모였어도 서로 이해하는 정도가 깊고 일치를 위한 노력이 대단했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이 점을 잘 이해하고 교훈으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제도권 교회가 일치를 이룰 수 없는 직접적 이유는 한국교회의 분열의 골이 너무 깊기 때문입니다. 장로교만 하더라도 교파 분열의 역사가 오래됐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 정치적 갈등에서 비롯됐다는 것인데 이를 치유하려면 우선 교단 자체의 노력이 필요하겠습니다. 이와 함께 교단의 다양성은 충실히 살리면서 한 지붕 아래서 일치를 추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봉사 영역에서 일치를 추구한 한국교회희망봉사단이 좋은 예입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등도 보편적 기독교 윤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교파를 초월했고 환경이나 생명문제에 대해서도 함께 연합할 수 있겠습니다. 신학자 리처드 니버는 교회의 분열은 윤리적 실패라고 지적했습니다. 사실 기독교 역사에서 분열은 교리적 이유가 아니라 다른 요인이 작용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화해하고 화합할 수 있는 가능성도 크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지 목사=신앙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과 연합기구 등의 제도를 통한 일치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말씀인데요. 그런데 기독교 내부의 갈등도 그렇고 사회를 향해서도 화해를 말하기 어려워진 게 걸핏하면 터지는 지도자들의 실수 사건 때문입니다. 지도자들의 실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손 목사=스캔들은 기독교 역사에 항상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주님의 교회가 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지체들이 약해 병이 들 수 있지만 머리이신 그리스도가 살아계시기 때문에 몸의 병은 치유될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일을 당할 때 종교개혁자 칼뱅 선생의 말대로 죄는 다스리고 사람은 살려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죄하는 사람 스스로 자신이 죽는 것과 같은 아픔으로 일깨워주는 게 필요합니다. 정죄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교회는 민족성 개조 사명을 감당해야

△지 목사=죄는 다스리고 사람을 살리는 것이 기독교적인 용서와 화해, 즉 ‘황금의 중용의 길’일 텐데요. 기독교계뿐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는 갈등과 분열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진보와 보수, 세대 간 갈등 등 사회 각 분야가 그렇고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과 미국의 힘겨루기 등 동아시아의 상황도 갈등과 분열을 확대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기독교계는 어떻게 사회적 갈등을 봉합하고 화해와 용서를 선포할 수 있을까요.

△손 목사=일반 사회에는 일종의 보복 문화가 있습니다. 보복의 문화는 중동의 유목문화에서 물과 초장을 뺏는 과정에서 나왔는데 그게 유대인들의 문화로 정착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를 용서의 문화로 바꾸셨습니다. 원수를 만드는 보복의 순환 고리를 없애는 길은 용서하는 길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한국 역사를 보면 분열의 병리현상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한민족은 외세의 침입에 상부상조하는 저력이 있었는데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주자학자들이 성리학을 잘못 이해하면서 붕당 정치의 발단이 됐습니다. 순수나 정통에 대한 주장은 언제나 배타와 분열을 초래합니다. 기독교는 지연과 학연, 혈연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복음과 성령의 능력으로 민족성 개조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독교가 먼저 하나 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사회에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지 목사=지금은 예언자적 말씀이 권위를 잃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사사 시대처럼 각자 소견대로 행하는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이 같은 시대에 어떻게 하면 복음의 권위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손 목사=권위라는 말은 ‘autho(저술가)’라는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저술가가 글 한 편을 쓰려고 하면 자신의 진실성을 다해야 글이 살아납니다. 애쓰고 힘써야 독자가 감동을 받고 글에 권위가 생기는 것입니다. 크리스천들도 말과 삶이 녹아질 때 권위가 생깁니다. 오늘날 강단이 위기라는 진단이 많은데 이는 강단에서 선포하는 말씀과 삶의 괴리가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때문에 말씀의 권위가 약해졌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한 말씀과 삶이 일치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또 말하는 것을 줄이고 실천을 강화해야 합니다. 지역사회 속에서 교회가 봉사활동을 묵묵히 수행할 때 권위가 다시 회복될 것입니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요한복음 1장 1절을 묵상하면서 “태초에 행동이 있었다”고 해석했습니다. 말씀이 곧 행동이라는 이 말을 음미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 목사=지금 한국교회엔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습니다. 갱신에 대한 필요성은 공통적인 관심사라 할 수 있습니다. 갱신은 회개를 통해 일어나고 그런 점에서 무엇을 내려놓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까요. 빌립보서 2장에서는 예수께서 자기를 비우신 ‘케노시스 기독론’이 나오는데 한국교회에 절실한 말씀 아닐까요

△손 목사=우리의 신앙 선배들은 자기 비우기를 잘했습니다. 그런데 경제적 부흥과 함께 교회가 성장하면서 성장주의와 맘모니즘도 유입됐습니다. 강단 메시지 역시 비우라는 설교보다는 ‘채우라, 가지라, 올라가라’는 말씀이 늘었습니다. 그렇게 되면서 교인들의 의식도 축복받고 잘 사는 것이 곧 믿음이라는 등식이 성립됐고, 교회마다 비우는 훈련과 나누는 운동이 약해지고 채우는 쪽을 강조하게 됐습니다. 잘 살게 된 것은 축복이 분명하지만 강한 영성훈련과 비움의 신앙을 유지하면서 채운 것을 나눌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을 병행했어야 했습니다. 지도자들은 또 명예욕이나 교권주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목회자들이 선거에 열을 내는 것은 일종의 성직매매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도 목회 초기엔 경제공황 등으로 힘들어하는 성도들이 잘 살기를 바라며 설교했는데 말년에는 나누고 베푸는 사랑의 실천을 더 강조했다고 합니다. 한국교회도 교회나 개인 단위에서 자발적으로 비우고 나누는 운동을 강화해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 신뢰가 회복되고 건강성을 되찾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된 예수의 대제사장의 기도를 보면 교회가 하나 되고 갱신하면 세상은 우리가 예수의 제자인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야말로 그대로 진리입니다. 하나 되면 세상도 압니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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